[미술산책] 자연에 맞닿은 조각

심문섭 ‘목신(Wood Deity)’. 1989. 소나무. 국립현대미술관


누군가의 집 기둥이었을 듯한 나무가 한 점의 덤덤한 조각이 됐다. 돛단배 같기도 하고, 농기구 같기도 하다. 찬찬히 보니 오랜 풍상을 겪은 인간의 초상인 것도 같다. 완성작이긴 한데 왠지 미완의 느낌을 주는 이 조각은 심문섭(74)의 ‘목신(Wood Deity)’이다.

조각가 심문섭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낡은 한옥들이 무차별적으로 철거되는 것을 목도하고, 그 목재를 수습해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을 만들었다. 허물어져버린 한옥의 기둥이며 대들보에 새 숨결을 불어넣고 싶어서였다. 버려진 나무들에는 그 공간에 살았던 이들의 응축된 삶이, 그리고 개인사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기에 더욱 끌렸다고 한다.

작가는 넓적한 나무판의 표면을 자귀로 둥글게 파내 살랑살랑 물결이 일게 했다. 그러곤 나무토막을 덧대 일으켜 세웠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폐목은 작가에게로 와서 이렇듯 ‘기억을 품은 조각’이 됐다. 단순히 인공적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심한 심문섭의 ‘목신’ 연작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여덟 차례나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이후로도 조각의 구조적 강함에서 벗어나 훌훌 자유로운 ‘뺄셈의 조각’을 천착해 온 작가는 지난 50년간의 작품세계를 ‘자연을 조각하다’라는 타이틀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풀어냈다. 이 회고전(10월 9일까지)에 가면 푸근한 ‘목신’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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