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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맹경환] 중국 앞에 우리는 하나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만 떠나면 될 줄 알았다. 문재인정부만 들어서면 풀릴 줄 알았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베이징의 교민들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보복이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특사단이 파견되면’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이 만나게 되면’ ‘8월 24일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이하게 되면’ 사드 문제가 풀리리라는 성급한 가정이 난무했다. 이 정부 출범 뒤 중국의 음원 사이트에 막혔던 한국 음악이 다시 등장하자 보복이 풀리는 거냐며 호들갑도 떨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첫 번째 계기라고 생각했던 특사단 방문을 보자. 특사 자격으로 방중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5월 18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다. 왕 부장은 한국 특파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심한 듯 모두발언을 했다. “지난해부터 중·한 관계는 있으면 안 되는 좌절을 겪었다. 한국 신정부는 이런 당면 문제를 직시하고, 중국 측과 소통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양국 관계 걸림돌을 제거하기를 바란다.” 사드를 직접 거론하지 많았지만 한국을 향해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라는 말이었다.

독일 G20의 한·중 정상회담도 큰 성과가 없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대도 사드 반대를 강조했다. 1인 지배체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 주석의 입만 보고 있는 중국 관리들에게는 사드 보복 해제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시 주석을 향해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적 정당성으로 시간을 확보한 뒤 그 기간 중에 북핵 문제가 동결 같은 해법을 찾아내게 되면 사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문재인정부의 구상이 먹힐 리 없다. 특히 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의 2차 발사에 대응해 한국 정부가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 배치하기로 하고 중국이 강력 반발하면서 사태는 더욱 꼬이고 있다.

이제 사드 문제는 장기전이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선언 이후 중국의 전방위 보복 사례나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최근 고인이 된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가 선정된 뒤 노르웨이와 중국의 지난했던 외교·통상 마찰만 봐도 그렇다. 특히 사드는 한국과 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까지 포함된 말 그대로 다국적 이해가 얽혀 있는 문제가 돼 버렸기 때문에 훨씬 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드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을 마련하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은 센카쿠 갈등 당시 또 있을지도 모를 중국의 경제보복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해외투자와 수출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취했다. 중국 외에 동남아 등에 생산 거점을 하나 더 만들자는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정책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은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물론 센카쿠라는 영토 문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다시 한번 우리를 되돌아봐야 한다. 벌써 중국의 직접적인 보복 타깃이 된 관광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이익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 총수가 나서 중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검토하는 모습은 곱게 볼 수는 없다. 중국 관광객을 태우고 한국으로 오는 전세기는 여전히 금지되고 있는데도 한국 관광객을 태우고 중국 관광지를 향하는 제주항공의 전세기는 7월 두 번이나 떴다.

중국의 비위를 맞추고 사정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보복은 풀릴 것이다. 냉정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지지만 때론 조금은 감정적이기도 하고 배짱도 한번 보여줘야 한다. 중국을 버릴 수는 없지만 중국에 목을 매고 있다는 인상을 줘서도 안 된다. 이러다가 정말 중국이 영원히 한국을 물로 보는 게 아닐까 두렵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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