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영화 ‘송 투 송’ ] 랭보와 보들레르가 록을 만난다면…


 
지난 26일 개봉한 테렌스 맬릭의 신작 ‘송 투 송’의 장면들. 영화는 음악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시적인 영상으로 그려낸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할리우드 대작 ‘덩케르크’가 전국 상영관의 80%를 장악한 한국영화 ‘군함도’의 물량공세에 밀려 후퇴하는 성수기 극장가의 전쟁터에서 잠시 음악과 사랑이 출렁대는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로 가 보자. ‘트리 오브 라이프’로 201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40년 경력의 노장 테렌스 맬릭이 라이언 고슬링, 루니 마라, 마이클 패스벤더, 나탈리 포트만 등 믿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스타캐스팅으로 만들어낸 색다른 음악영화 ‘송 투 송(Song to Song)’이다. 여기에 케이트 블란쳇, 발 킬머, 이기 팝, 패티 스미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 유명한 배우와 가수, 록 밴드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미국 텍사스주의 오스틴은 ‘펀펀펀 페스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등 대규모 음악축제들이 열리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맬릭 감독은 엄청난 군중의 열기로 가득 찬 실제 페스티벌의 한가운데를 촬영지로 택해 네 명의 젊은 남녀가 그려내는 사랑과 방황을 그려낸다.

뮤지션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페이(루니 마라)는 잘 나가는 작곡가 BV(라이언 고슬링)를 만나 ‘노래에서 노래로, 키스에서 키스로’ 이어지는 행복하고 평온한 사랑을 꿈꾼다. 그녀의 야망을 BV의 절친한 동료인 음악프로듀서 쿡(마이클 패스벤더)이 이용하면서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스토리 자체는 매우 단순하고 진부하지만, 맬릭은 ‘투 더 원더’ ‘나이트 오브 컵스’ 등 이전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속에서 생성되는 감각과 인물의 내면을 관찰하는 데에 더 관심을 두는 듯하다. 시간적 흐름이나 인과 관계는 무시되거나 생략된다.

한마디로, 불친절한 영화다.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이 출연하는 음악영화라는 데에서 관객이 일반적으로 기대할 만한 장면은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실제로 주인공 페이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가수인지 연주자인지조차 극중에서는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는다. 록 페스티벌의 콘서트 무대와 관중의 열기는 희미한 배경으로만 활용된다. 음악에 대한 갈증을 유발하는 음악영화라고나 할까.

사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밥 말리부터 카미유 생상스, 클로드 드뷔시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로 채워지며 인물들의 관계와 내면 심리를 비춘다. 하지만 이러한 멜로디는 각 인물의 시적인 독백에 늘 자리를 내준다. 페이의 아파트 한쪽 벽면에 걸린 아르튀르 랭보의 초상이 보여주듯, 이 독특한 음악영화가 관객을 이끌고 가려는 곳은 결국 시와 감각의 세계다.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끝없는 사랑이 영혼 속에 솟아나리라/ 나는 멀리 떠나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랭보의 ‘감각’ 중에서)

자유와 사랑을 꿈꾸는 이들의 방랑이 시인 랭보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면, 럭셔리한 아파트로 이루어진 픽션의 공간과 생생한 음악축제 속 다큐멘터리적 공간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맬릭의 영상들은 샤를 보들레르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 오로지 혼돈과 아름다움, 사치, 흥분과 관능뿐이어라.”

편안히 음악과 스토리를 즐기기보다 화면들 사이에 생략된 시간과 이야기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난해한 영화다. 하지만 판에 박힌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시적인 영상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면, 특히 록 음악 마니아 혹은 루니 마라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금미 <영화칼럼니스트·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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