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사랑이 싹트는 순간

장 앙투안 와토 ‘La Surprise’(부분). The Getty Center


우아하게 차려입은 한 쌍의 남녀가 뜨겁게 입 맞추고 있다. 하늘하늘한 실크패션으로 한껏 멋을 낸 걸 보니 귀족임에 틀림없다. 세레나데를 연주하던 악사도 두 사람의 열렬한 키스에 넋을 반쯤 잃었다. 그림 하단에 등장하는 강아지도 귀를 쫑긋 세우고, 기묘한 포즈를 바라보고 있다. 아크로바틱(곡예)에 가까운 입맞춤을 그린 이 밀회도는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앙투안 와토의 작품이다. 궁정화가였던 와토는 로코코 양식의 대가로 꼽히며 ‘페트 갈랑트’(사랑의 연회)라는 장르를 창안했다. 페트 갈랑트는 성장(盛粧)을 한 귀족남녀들이 야외에서 밀어를 속삭이거나 파티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화가 자신이 건강이 좋지 않았기에 와토의 그림은 낭만적이면서도 우울함이 감돈다. 이 환희에 찬 순간 또한 곧 사라져버릴 것임을 암시하듯 멜랑콜리하다. 절정의 이면에 덧없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37세에 요절한 화가는 간파하고 있었으리라.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와토의 이 걸작은 150년간 종적을 감췄다가 최근 로스앤젤레스(LA) 폴 게티 뮤지엄의 품으로 들어갔다. 폴 게티 뮤지엄은 영국의 한 컬렉터로부터 와토의 유화와 미켈란젤로, 루벤스, 드가의 드로잉을 1억 달러에 사들였다. 부자 미술관다운 행보다. 억만장자였던 폴 게티는 석유로 번 돈을 들고 전 세계를 돌며 진귀한 작품을 수집했고, 그 결과 폴 게티 뮤지엄은 미국 서부 최고의 미술관이 됐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로코코 걸작이 더해졌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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