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월드

78도 찜통 속에서 끝난 ‘아메리칸 드림’

미국 경찰이 23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대형마트 주차장에 세워진 트레일러 주변을 조사하고 있다. 트레일러에서는 중남미 출신으로 보이는 밀입국자 시신 8구가 발견됐다. 샌안토니오는 멕시코 국경에서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다. AP뉴시스


“물 좀 주세요….”

참사로 끝난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것은 폭염 속에 방치된 트레일러를 뛰쳐나온 한 밀입국자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미국 텍사스주(州) 샌안토니오 고속도로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 22일 밤(현지시간)부터 세워져 있던 트레일러는 중남미에서 온 밀입국자들의 참혹한 ‘무덤’이 됐다. 밀입국자에게 물을 가져다 준 마트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지 경찰은 트레일러에서 8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30명을 발견했다고 CNN방송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부상자 중 한 명이 추가로 숨져 희생자는 9명으로 늘어났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간 부상자 중 10여명이 중태여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지 경찰과 미 연방이민국은 이번 참극을 불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범죄조직의 소행으로 보고 미 국토안보부와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다.

리처드 더빈 이민국 연방검사는 성명을 통해 “끔찍하게 잘못된 밀입국 시도를 적발했다”면서 “인간의 생존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자비한 인신매매 범죄자들의 손에 희생자들이 당한 것 같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해보라”고 강조했다.

문제의 트레일러가 발견됐을 당시 사람들을 태운 화물칸 에어컨은 고장 난 상태였고, 내부에는 마실 물이 있던 흔적조차 없었다. 38도를 웃도는 현지의 폭염과 금속 재질의 트레일러 구조로 볼 때 차량 내 화물칸 온도는 78도까지 치솟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움직이는 오븐’과 같은 끔찍한 공간에 갇힌 밀입국자들은 호흡곤란에 따른 질식과 뇌손상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샌안토니오 경찰은 애초 트레일러 안에 100명 이상이 있었다는 생존자 증언을 바탕으로 발견된 이들 외에 중간에 탈출했거나 다른 차량으로 옮겨진 이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트레일러 운전자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는 현지 경찰은 인근 CCTV를 통해 주차된 트레일러로 다가온 또 다른 차량이 생존 탑승자 일부를 데려간 사실도 확인했다. 수사 당국은 희생자들이 주로 멕시코나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지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