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김영석] 김이수 실종사건



175일이다.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장 사무실이 비어 있는 기간이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다음 날인 2월 1일부터다. 역대 최장 공석 기록이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되면서다.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지난달 8일 끝났지만 청문보고서 채택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추경 등 현안에 밀리면서 정치권에선 논의 자체가 사라졌다. ‘김이수 실종사건’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7월 임시국회가 끝나면서 적어도 9월 정기국회까진 기록 경신이 이어질 전망이다.

헌재소장 공석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06년 윤영철 전 소장 후임으로 전효숙 당시 재판관이 지명됐지만 절차 문제 등으로 사퇴했다. 128일 동안 공석이 발생했다. 2013년엔 이동흡 당시 재판관이 후임 소장으로 지명됐으나 특정업무비 유용 의혹으로 낙마했다. 박 전 소장이 임명되기까지 80일 동안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졌다. 지난 3월 13일 권한대행을 맡았던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서는 16일 동안 7인 체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헌재소장 공석이 일상화된 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헌재소장 공석은 비정상적인 ‘8인 체제’를 의미한다. 지금도 1명의 재판관이 공석이다. 헌재소장이 임명되지 않으면서 후임 재판관 지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111조 2항은 “헌재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고 되어 있다. 8인 체제를 방치하는 것은 일종의 헌법 위반인 셈이다. 8인 체제에서 재판관 의견이 4대 4로 팽팽히 맞설 경우 심리 진행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다. 결국 피해는 애타게 결정을 기다리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치권은 무관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청와대 기자실에서 지명 사실을 직접 발표했다. “대행체제가 너무 장기화하는 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여당은 책임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표결 결과에 자신이 없는 듯하다. 일각에선 권한대행 체제를 계속 유지하자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김 후보자의 잔여 임기가 내년 9월까지인 만큼 이후 새 인물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 공백을 핑계로 문제 인사들의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 것과 대비된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후보자를 지명하는 게 맞다. 헌재는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김영석 논설위원, 그래픽=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