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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보인다

알포스 무하의 ‘황야의 여인’


14년 전, 나는 경북 경산의 국군병원에서 근무하다 갑자기 이라크 파병 통지를 받았다. 당시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연고도 없는 곳에 내려와 이름 모를 산중턱 오래된 관사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파병 통지를 받고, 아내와 나는 두 손을 잡고 울었다. “그 많은 정신과 군의관 중에 하필이면 왜 내가 파병을 가야 하느냐”며 원망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왜 우리 군이 참전하느냐’며 억한 마음까지 품었다. ‘어디로 사라져버릴까’ 하는 헛된 생각도 잠시 했지만, 어쩌겠는가. 2004년 봄 파병된 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이라크 나시리아에서 전화로 알게 됐다.

지금은 그때 일을 강연하며 유머삼아 꺼내놓는다. 내 책을 담당했던 편집자가 출산했을 때 남편이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고 하길래 “그래도 당신 남편은 나보다 낫네. 나는 딸이 태어났을 때 이라크에 있었거든” 하고 위로삼아 말하게 됐다. 임무를 끝내고 서울공항에 내려 딸을 처음 안았을 때 왕 하고 울던 모습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지만 “웬 시꺼먼 사람이 안으니까 딸도 놀랐겠죠, 껄껄걸” 하며 웃으며 이야기한다.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의 일들은 지금의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거의 조각들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는 시시각각 그 색깔이 달라진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곤경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럭저럭 견딜 만했던 기억으로 희석된다. 세월이 더 흐르면 고난은 추억으로 수렴된다. 과거의 아픔이 미래를 향한 추동력이 되는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법이고. 과거사를 너무 조급하게 재단하면 안 된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을 경망스럽게 털어버리려고 하면 역사는 퇴색된다. 불쾌한 감정이 남아 있을 때는 진실도 흐려진다. 내 마음에 맞는 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악으로 몰고 갈 위험이 커진다. 숙성되지 않은 과거는 가슴에 묻고 주어진 소명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비로소 “이건 옳았다, 저건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과거를 제대로 보고 그것의 가치를 깨닫게 되기까지는, 언제나 긴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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