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김명호] 고위공직자의 소신과 배짱



프랑스군 최고위 장성인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엊그제 전격 사임했다. 인기 좋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조치로 국방예산 삭감을 밀어붙이자 사표를 내던진 것이다. 대통령은 국방부를 찾아가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그는 대테러전을 치르고 있고 지역 안보, 해외파견 병사 안전 등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었다. 국회 답변과 언론 등을 통해 군 통수권자와 최고위 장성의 의견차가 심각히 노출됐다. 외신이 전하는 사퇴의 변은 깔끔하다.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지휘권을 더는 행사할 수 없게 됐음을 절감한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데이비드 랭크 주중국 미국대사 대리가 반발해 사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탈퇴를 반대했던 그가 “양심상 그 결정을 중국에 공식 통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중 당시 미·중의 파리협약 공동비준 실무를 맡았었다고 한다. 올해 초 트럼프의 반이민·반난민 행정명령이 소송으로 번지자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은 위헌을 이유로 대통령과 정부를 변호하지 말라고 법무부 소속 법조인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해임됐다. 그 뒤 국무부와 법무부 소속 공직자 수천명이 대통령 명령에 반기를 드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우리네 공무원들에겐 영혼이 없다고들 한다. 다 그런 건 아닐 게다. 게다가 그런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요소도 많다. 우리보다 좀 앞선 나라의 공직자들이라고 모두 소신과 배짱을 갖춘 건 절대 아니다.

전임 정권에서 부당하고 황당한 지시가 많았다. 지금 보니 관련 공직자 대부분이 애써 모른 척한 거다. 이 정권 들어서는 180도 바뀐 정책 추진이 많다. 그러니 완벽하게 자기부정을 해야 할 ‘늘공’들도 많을 게다. 소신과 배짱, 말도 안 되는 정치권 주장을 치받는 당당함, 고위공직자에게서 보기가 이리 힘든가.

글=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