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한민수] 카게무샤와 곰돌이 푸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동쪽 가히라 지방의 영주 다케다 신겐은 통치력과 군사력에서 다른 영주들을 압도했지만 대권을 잡으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와의 일전이 불가피했다. 신겐은 초반 전투에서 승리하고 진격하던 중 숨졌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3년간 적에게 숨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신들은 영주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구해 가짜 신겐을 내세웠다. 카게무샤, 즉 그림자 무사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카게무샤’의 줄거리다.

미군 폭격을 두려워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을 빼닮은 카게무샤를 여럿 뒀다는 소문도 있었다.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라크의 후세인도 암살 위험을 피하기 위해 대역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최고 지도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때 부귀영화를 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권력자를 닮아 불행을 겪은 경우도 있다. 국내에선 외모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유사했던 배우 박용식씨가 그랬다. 박씨는 전 전 대통령 집권기간에 TV 출연이 거부되는 등 핍박을 받았다. 대통령 부인의 특정 신체부위를 닮아 차별을 받았다는 여배우 얘기가 연예계에서 회자된 적도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이 만화 ‘곰돌이 푸(Winnie The Pooh)’의 곰 캐릭터인 ‘푸’ 이미지를 SNS에서 없애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주말부터 중국의 대표적 SNS인 웨이보와 위챗 등에서 푸가 들어간 게시물이 삭제되고 있다. 푸가 시진핑 국가주석과 닮았다는 게 이유란다. 2013년 시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만난 사진에서 시 주석이 푸, 오바마 대통령은 호랑이 캐릭터 ‘티거’로 묘사됐다. 이후 시 주석은 푸 이미지로 자주 등장했다. 중국이 사람도 아닌 만화 주인공 푸를 갑자기, 왜 ‘탄압’하는지 속내는 모르겠지만 역효과가 크지 않을까 싶다. 시 주석을 희화화했다고 싫어하는 사람보다 친근감을 느끼는 이가 더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꿀을 즐겨 먹는 나도 푸를 좋아한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