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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준동] 정유라와 장시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21)와 최씨의 언니 순득씨의 딸 장시호(38)는 닮은 점이 많다. 사촌 지간인 둘의 행동과 발언은 톡톡 튀고 거리낌 없다. 지난 5월 31일 도피생활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 정씨는 모든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렸다. 때로는 미간을 찌푸리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강제 송환된 사람 같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런 4차원적 모습은 사촌 언니 장씨를 연상케 한다. 장씨는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외의 답변으로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저를 미워하지는 말라”는 한 의원의 농담에 “꼭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응수해 폭소를 자아냈다. 장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차명 휴대전화 번호를 제공하는 등 삼성 뇌물 수사에 큰 도움을 줘 ‘특검 복덩이’로 불렸다. 국정농단 핵심 가운데 1호 석방을 기록하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승마 선수로 활동한 것도 공통점이다. 고교 때 승마 선수로 뛴 장씨는 1998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 전교 261명 중 260등을 기록한 성적표가 공개돼 특혜 의혹까지 일었다. 정씨가 성악을 배우다 초등학교 때 승마로 전환한 것도 장씨의 영향이 컸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결국 이혼한 뒤 혼자서 자식을 키우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정씨에게는 두 살배기 아들이 있고 장씨에게는 초등생 아들이 있다.

국정농단이 터지기 전까지 둘 사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씨가 2015년 출산 당시 장씨가 마련한 제주도 아파트에 머물렀고, 장씨는 제주까지 내려가 정씨 모자를 돌봤을 정도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이 사촌 간을 악화시켰다. 정씨는 덴마크 구금 중이던 지난 2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촌 언니의 행동에 대통령님 지지자들께 고개를 들 낯이 없다’고 했고, 최근 법정에선 “엄마 비자금은 장시호 언니가 숨겨 놓고 가로챘다”고 장씨를 저격했다. 정씨는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깜짝 출석해 어머니에게 불리한 증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장시호 효과’라는 말이 나온다. 사촌 언니가 수사·재판에 협조하고 풀려난 과정을 지켜본 정씨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배신하고 ‘특검 도우미’로 나섰다는 것이다. 장씨가 초등생 아들 때문에 특검에 적극 협조한 것처럼 말이다. 같은 듯 다른 사촌 간의 물고 물리는 진흙땅 싸움에 국정농단의 실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래저래 재판에 관심이 쏠린다.

글=김준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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