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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腸 아픈 청춘 느는데… 의료비 늘까 ‘속앓이’







“정부 특별 지원 대상에서 빠지면 증상이 심할 때 처방받는 생물학적 약물인 레미케이드의 경우 한 번 주사 맞는 데 200만원가량을 내야 합니다. 기존 20만원에서 10배를 내야 돼요. 문제는 이걸 8주 간격으로 계속 맞아야 하는데, 환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거죠.”

“잘 낫지 않고 재발이 잦은 데다 처음엔 가벼운 증상을 보였다가도 중증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일반 소화기 질환에 비해 처방약들이 비싼 편이고 평생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료비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난치병인 염증성 장질환자와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최근 국회에 모여 한목소리로 의료비 경감 지원의 지속을 정부에 강력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과 대한장연구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염증성 장질환 극복을 위한 의료지원 심포지엄’ 자리에서다. 지난해 말 시행된 희귀질환관리법으로 염증성 장질환 중 일부가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산정특례는 본인 부담이 큰 암, 심장·뇌혈관 등 중증질환이나 희귀난치병의 진료비를 깎아주는 제도다. 중증질환은 외래·입원비를 5∼10%, 희귀난치병은 10%만 내면 된다. 정부는 현재 희귀질환 및 산정특례 대상 질환 재분류 작업을 벌이고 있다.

환자 늘어 희귀병 제외되면…

염증성 장질환은 소장과 대장 등 몸에서 소화와 영양 흡수를 담당하는 장 안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증이 끊임없이 생기는 만성병이다.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이 대표적이다. 예전엔 생소했던 이들 질환자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때문에 과거 환자 수 2만명 이하인 희귀질환으로 분류됐던 것과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

1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크론병 진료 환자는 2012년 1만4721명에서 지난해 1만9204명으로 4년 새 30.5% 증가했다. 희귀병 분류 기준인 2만명에 육박했다. 궤양성대장염 환자는 지난해 3만8212명으로 2012년(3만176명)보다 26.6% 늘었다. 궤양성대장염은 희귀병 대상 제외가 확실하다. 크론병도 증가 추세로 봤을 때 몇 년 내 희귀병 분류에서 빠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염증성 장질환은 백인에서 흔하고 동양인에서는 비교적 드물었다. 서양의 경우 궤양성대장염 발생 비율(2011∼2012년)이 인구 10만명당 24.3명, 크론병은 29.3명이다. 반면 한국(2006∼2012년)은 각각 4.6명, 3.2명으로 크게 차이난다. 그런데 1980년 중후반부터 이들 질환이 한국에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1∼1995년 인구 10만명당 0.87명에 불과했던 궤양성대장염의 경우 1.74명(1996∼2000년) 3.08명(2001∼2005년) 4.6명(2006∼2012년)으로 꾸준히 늘었다. 크론병도 같은 기간 0.22명, 0.52명, 1.34명, 3.20명으로 상승했다.

식생활이 장 미생물도 바꿨다

염증성 장질환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장 안에 살고 있는 미생물과 인체 면역 시스템 사이의 이상 반응이 지속돼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장 속 미생물군의 변화에는 식습관 변화와 스트레스, 흡연, 약물복용 등이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서구화된 식습관과 감염, 흡연, 소염진통제 오남용 등이 염증성 장질환의 빠른 증가세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예병덕 교수는 “1988년 올림픽을 즈음해 국내에 패스트푸드와 청량음료 소비가 크게 늘었다”며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으면 장내 미생물 종류나 분포에 변화가 오고 장 염증 수치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박동일 교수도 “동물성 지방 음식을 많이 먹고 채소나 섬유소 섭취가 줄면 장내 미생물 중 인체에 유익한 균은 줄고 유해한 균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며 “이것이 장 면역계에 영향을 미쳐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이른바 위생 역설이다.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장티푸스 등 과거 많이 걸렸던 감염병은 줄어든 반면 천식이나 아토피피부염, 염증성 장질환 같은 면역계 질환은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좀처럼 끊기 힘든 흡연의 경우 크론병 발병과 악화의 원인이다. 고령화로 인한 퇴행성관절염에 오남용되는 소염진통제는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 모두를 악화시킨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증가 추세라면 조만간 국내 염증성 장질환자 수가 서양 수준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달 이상 설사 복통 혈변 시 의심

염증성 장질환자는 경제활동 연령대인 젊은층에서 주로 발생하고 완치가 어려워 평생 치료·관리가 필요하다. 심평원의 연령별 진료 환자를 보면 크론병은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많이 발병한다. 궤양성대장염은 20대 후반부터 환자가 늘기 시작해 30∼50대가 60%를 넘게 차지한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염증이 여러 곳에 띄엄띄엄 퍼져 있으며 깊은 궤양(푹 파인 염증)을 동반한다.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와 복통, 심한 설사가 주 증상이다.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 게 특징이다. 증상이 헷갈리기 쉬운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배가 살살 아프다 변을 보면 좋아지지만 크론병은 계속 아픈 게 다르다.

궤양성대장염은 염증이 대장에만 국한돼 생긴다. 장 점막에 얇게, 주변으로 연속해 분포한다. 설사와 혈변이 특징이다. 코같이 끈적끈적한 점액질과 피가 변에 섞여 나온다. 치질과는 감별해야 한다.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은 증상이 5% 정도 비슷하다. 내시경 검진과 장 CT, MRI 등을 해봐야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 예병덕 교수는 “설사와 혈변이 한 달 넘게 반복되고 참을 수 없는 변 급박감, 점액질 변 등이 나타나면 궤양성대장염을, 복통이나 설사 체중 감소가 4∼6주 지속된다면 크론병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궤양성대장염은 10년이 지나면 대장암 위험이 높아진다. 10년 이후에는 1∼3년마다 한 번씩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크론병의 경우 오래 앓았거나 염증이 광범위할 경우 대장암뿐 아니라 소장암 위험도 높아지는 만큼 소장 촬영 검사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젊은층 부담 배려 필요

두 질환은 화장실을 달고 살아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궤양성대장염은 변이 급히 마렵거나 화장실을 다녀와도 시원치 않은 점이 고역이다. 젊은 환자들의 경우 학업이나 직장생활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경제적 부담도 크다. 한 20대 직장인 궤양성대장염 환자는 “활동기(염증이 많은 시기)에는 화장실을 수시로 들락날락해야 한다. 주변에 얘기하기도 그렇고 혹시 업무 도중에 실례할까봐 불안할 때도 많다. 치료를 위해 조퇴나 연가를 자주 내는 것도 눈치 보인다”고 털어놨다.

대한장연구학회가 염증성 장질환자 599명을 조사한 결과 81%가 질환 활동기에 피곤하고 허약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정도는 5점 만점에 평균 4.3점이나 됐다. 68%(평점 3.7점)는 증상 없을 때도 정신적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61%(평점 3.6)는 사람과 관계 형성에 장애를 받았다고 답했다. 64%(평점 3.7)는 조퇴·결석(결근)·휴학(휴직)할 때 스트레스, 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54%(평점 3.5점)는 치료비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하거나 죄책감이 들었고 21%(평점 2.5점)는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중단·포기한 적 있다고도 했다.

박동일 교수는 “특히 젊은층 환자들의 경제·정신적 부담과 삶의 질 저하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책적 배려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희귀병 산정특례에서 제외되면 현재의 일괄 본인부담 10%에서 지원 비중이 줄거나 중증 환자 위주로 대상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환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은 증상 기복이 심한데, 대상 기준이 모호할 수 있다. 경증이라고 제외됐다가 나중에 중증이 되는 환자들이 계속 혜택에서 소외될 수 있고 그 반대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공단 산정특례위원회 관계자는 “염증성 장질환처럼 호전과 악화의 변동이 심한 질환은 특성을 감안해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희귀질환관리법에 배제되더라도 가까운 질환과 연계한 지원으로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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