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국민타자 이승엽, 불멸의 별로 뜨다

이승엽(가운데)이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앞서 두 아들과 함께 시구·시타·시포 행사를 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 큰 아들 은혁군에게 어떻게 공을 던지는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20년 전인 1997년 첫 올스타에 선정된 이승엽은 이번에 마지막 올스타전을 치렀고 올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 뉴시스
 
1997년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때 앳된 모습으로 공을 노려보고 있는 이승엽. 유투브 캡처


1997년 7월 8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21세였던 이승엽은 입단 3년차에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당시 그의 별명은 ‘아기 사자’. 동군(삼성·OB·롯데·쌍방울) 1루수 부문에서 올스타로 선정됐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은 아기 사자는 첫 올스타전 출전에 매우 들떴다. 그리고 4타수 2안타(1홈런 포함)의 맹타를 터트렸다. 최우수선수(MVP)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팀이 지면서 서군(해태·LG·현대·한화) 유격수 유지현(LG)이 최고의 별이 됐다. 이승엽은 감투상을 받았다. 올스타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이승엽은 그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홈런 32개를 때려내 생애 첫 홈런왕에 올랐다.

꼭 20년 후인 2017년 7월 15일, 불혹을 넘긴 이승엽은 20년전과 같은 고향 대구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출장했다. 개인 통산 11번째 올스타전 출전이었다. 이승엽에게 올해 올스타전은 특별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에겐 마지막 올스타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프로야구 최고령 올스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드림 올스타 지명타자 부문에서 총점 54.41점(전체 3위)으로 당당히 올스타에 선정됐다.

이날 경기에선 관중들이 모두 원한 홈런은 나오지 않았지만 안타 1개를 치며, 자존심을 지켰다. 이승엽이 속한 드림 올스타가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이승엽은 올스타전을 마친 뒤 “마음 먹은 대로 안 됐다. 내 능력이 여기까지인 것 같다”라며 씩 웃었다. 최고의 타자라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2000년대 후반에는 야구를 잘해서 좋았는데, 지금은 박수를 받으면서 끝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더 좋다”고 말하며 이 순간의 행복을 이야기했다.

올스타전에 참가한 후배들에게도 이 자리는 영광 그 자체였다. 이번 올스타전 MVP에 선정된 최정(SK)은 “커리어 자체를 비교할 수 없다. 이승엽 선배와 견줄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승엽의 경북고 후배인 박세웅(롯데)은 “선배의 마지막 올스타전을 같이 해서 뜻 깊고,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의 김민식도 “선배님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은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경기에 앞서 이승엽은 20년 전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때는 없었던 장남 은혁(13), 차남 은준(7)군과 함께 그라운드에 올랐다. 은혁군은 시구를, 은준군이 시타, 이승엽은 시포를 맡았다. 은혁군은 “아빠의 마지막 올스타전이니 더 파이팅해서 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스타전을 맞아 이승엽이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것을 감안, 단독 토크콘서트를 통해 헌정곡 발표, 미니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거절했다. “올스타전은 모두의 축제여야 한다. 내가 주연이 되는 행사는 최소화 해 달라”는 말과 함께.

이승엽이 야구계의 레전드로 대접받는 것은 그의 무수한 대기록뿐만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 못지 않은 겸손과 배려의 정신 때문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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