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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보 별세] “中 인권탄압국” 위상 추락 불가피… 천안문 민주화 운동의 상징 감시속 숨져

류샤오보가 사망한 13일 밤 홍콩 시민들이 홍콩주재 중국연락판공실 앞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시민들은 ‘류샤오보를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사법국은 류샤오보가 13일 오후 다발성 장기 기능 상실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AP뉴시스




“류샤오보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해외 치료를 고집하는 건 자신이 죽더라도 아내 류샤는 해외에서 남아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영국 BBC가 보도한 류샤오보 친구의 전언이다. 친구는 “류샤오보는 자신이 죽은 뒤에 류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반드시 그녀를 해외로 빼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전했다.

13일 숨진 중국 민주화 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중국 당국의 감시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20년 가까이 온갖 고초를 겪다 결국 암을 이기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마쳤다. 부인에게라도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도록 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류샤오보는 독일 평화주의자 카를 폰 오시에츠키(1889∼1938)에 이어 두 번째로 복역 중 사망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193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시에츠키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병원에서 숨졌다.

1955년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88년 베이징사범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노르웨이 오슬로대와 미국 하와이대, 컬럼비아대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중국 현대문학 등을 강의했다. 전도유망한 젊은 학자이자 촉망받는 작가였다. 뉴욕에서 유학하던 그는 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귀국해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벌였고, 마지막까지 남은 학생들이 무사히 광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군과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천안문 사태가 유혈진압된 이후 반혁명 혐의로 투옥돼 20개월 동안 비밀 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수용소에서 나와 좌절할 때 젊은 시인이자 화가였던 6세 연하의 류샤를 만났다. 류샤오보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한 여자에게 응축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류샤의 아버지는 은행권 고위간부로 유복한 가정이었다. 두 사람은 96년 천안문 인근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류샤오보가 이후 20여년 동안 투옥과 노동교화, 석방을 되풀이하는 등 부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8년 12월에는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지식인 303명이 중국의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08 헌장’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6개월 넘게 구금됐던 그는 2009년 6월 국가전복 선동혐의로 구속돼 같은 해 12월 징역 11년형과 정치권리 박탈 2년형을 선고받았다. 류샤오보는 2009년 12월 작성한 법정 최후진술문에서 “내게는 적이 없고 원한도 없다. 따라서 나는 최대의 선의로 정권의 적의(敵意)를 대하고 사랑으로 원한을 녹임으로써 개인의 처지를 넘어 국가발전과 사회변화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호소했다.

2010년 10월 랴오닝성 판진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그는 중국에서 기본인권 수호를 위해 일관되게 비폭력 투쟁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 국적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수형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노벨상에 대한 모독’이자 서방국가의 ‘정치적 음모’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류샤오보가 암으로 가석방되자 그의 수감생활과 투병, 치료를 위한 해외 석방 청원 등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중국 정부는 외국에서 치료받도록 해달라는 류샤오보와 국제사회의 요청을 ‘내정 간섭’이라며 거부해 왔다.

류샤오보의 사망으로 중국은 최대 아킬레스건인 인권 탄압 이미지가 더욱 굳어져 국제적 위상 추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민주화 요구 시위대를 탱크로 무자비하게 짓밟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인권 문제를 줄기차게 비판해온 국제앰네스티(AI) 등 인권단체는 류샤오보 사망을 빌미로 공세의 고삐를 조일 전망이다.

노벨위원회 “中 무거운 책임져야”

노벨상을 주관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가 간암 투병 중 사망한 것과 관련, 중국 정부가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베리트 라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대표는 이날 언론에 발표한 성명에서 “류샤오보가 치명적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로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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