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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의 현장보고] “아기악어는 금방 클거에요” 5살 유민이의 희망

김유민(5·가명)군과 같이 어린이 화상 환자는 치료 과정이 끝나도 사회적 편견과 학교에서의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그렇게 살고 싶냐. 내 살 떼서 붙여라!" 환자를 향한 불청객의 잔인한 조롱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병원 직원들이 달려들어 재빨리 취객을 밖으로 끌어냈지만, 그의 저항은 제법 거칠었다. 사내는 허공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카악, 퉤" 병원 바닥은 금세 가래침으로 얼룩졌다. 병원을 나서며 맞닥뜨려야 하는 세상의 시선인 것만 같다. "저기" A수간호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직이 말했다. 방금 전의 충격에 빠져 있다 퍼뜩 놀라 A를 돌아봤다. "아동 환자 어머니께서 취재에 어렵게 응해주셨어요." "그랬군요."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네."

병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스티커’였다. 간호사 호출 버튼이 있는 머리맡에는 바다사자와 돛단배, 조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필시 바다를 좋아하는 김유민군의 ‘소행’이었다. 아이의 스케치북에도 유독 바다 풍경이 많다. 바다가 좋아 바다에 가고 싶은 유민군은, 그러나 바다에 갈 수 없다. 손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뜨거운 국에 손을 심하게 데인 유민군은 수차례 이어진 수술에도 좀처럼 차도가 없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화상환자들에게 자주 관찰되는 심리,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이다. 여기서 ‘내게’는 ‘내 아이’로 확대된다. 어머니는 자신이 사고를 방조 혹은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민군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잘 때도 엄마가 곁에 있어야 안심을 한다. 유민군이 그린 악어, 돌고래, 물고기 그림은 꼭 한 쌍이다. 큰 악어는 엄마, 작은 악어는 유민이다. “엄마 저는 다섯 살이죠?” “그래, 유민이는 5살이야.” “여섯 살 되면 바다에 가요?” “응…. 6살 되면 바다에 가자.” “엄마 악어 그림 그려주세요.” “여기 자….” “엄마, 엄마, 악어도 바다에 살아요?” “그래. 유민아.” “바다에서 악어를 볼래요.”

유민이는 장난꾸러기다. 9살 형과 뒤엉켜 놀다보면 먼지투성이가 되곤 했다. 사고 전까지는 그랬다. 유민군의 어머니는 말끝마다 ‘보통 아이들처럼’이란 말을 붙이곤 했다. 보통 아이들처럼 유민이가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요즘 같은 여름은 유민이를 더 힘들게 한다. 햇볕은 화상 상처에 치명적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폭염에도 환부를 내어 놓아선 안 된다. 화상이 무서운 이유는 비단 상해나 치료 과정에서의 극심한 고통 때문이 아니다. 합병증은 특히 환자와 보호자를 괴롭힌다. 유민이와 같은 어린이 환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비롯해 우울·불안·수면장애·행동장애·학습장애·주의력 결핍 등의 중복장애가 자주 나타난다. “엄마 아기 악어 그려주세요.” “응, 조금만 있다가.” “아기 악어 그려주세요.” “그래.”

유민이는 상당 기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엄마는 병원에서 유민이를 돌보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큰 아이는 철이 일찍 들었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아침마다 아빠에게 묻는대요. 엄마가 스무 밤 자면 오냐고요.”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큰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짙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눈에는 이내 안타까움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이다. 빠듯한 살림은 유민이의 병원생활이 길어질수록 더 팍팍해졌지만, 엄마는 완치만 된다면 영혼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 보통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잇단 수술로 병원에 가야할 때마다 유민이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으려 한다. 병원에 가면 ‘아프기’ 때문이다. 엄마의 설득이 애달프다. “유민아 딱 스무 밤만 자고 올 거야.”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아이를 업은 엄마나, 그 뒷모습을 보는 아빠의 가슴은 매번 무너진다.

아직 유민이에게 우울반응은 관찰되지 않았다. 엄마는 시한폭탄 같다고 말했다. 화상 치료 과정에서 아이가 감당해야 할 통증이나 흉터와 후유증 등은 아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라도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염려를 안고 있었다. ‘아이가 수술을 받다가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수술 후유증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언제쯤 완쾌될까’ 아이가 칭얼대다 잠든 밤이면 엄마는 이런 생각들로 괴롭다.

치료가 끝나고 나도 넘어야할 산은 남아있다. 우울증과 용모손상에 따른 회피반응, 활동퇴행, 불안감 등이 환자를 짓누른다. 이를 잘 이겨내도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이들이 넘어야 할 벽이다. 화상 흉터는 눈에 잘 보인다. 우리 사회는 아직 화상 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편견과 시선은 화살이 되어 마음에 내리 꽂히는 경우가 많다.

유민이 경우와 같이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지낸 경우, 가족 간에 서먹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로 인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장기간의 입원치료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화상 흉터는 학우들의 환자에 대한 따돌림을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악어의 조상은 카르누페스 캐롤리넨시스(Carnufex carolinensis)로 알려져 있다. 공룡이 등장하기 전 이 녀석은 지구를 지배한 최강의 포식자였다. 현재 이를 닮은 악어는 바다악어다. 바다악어는 몸무게는 1톤이 넘고 몸길이만 6미터 가량 된다. 현존하는 파충류 중 가장 크고 힘이 세다. 넘치는 힘으로 파도를 헤치며 자기보다 몸집이 큰 호랑이도 잡아먹는다.

기사에 넣을 사진을 고르던 중 유민이의 악어 그림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주황색 악어가 점차 살이 붙고 단단한 외피를 갖추더니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진을 뚫고 나온 바다악어는 기자를 흘깃 쳐다보다 한강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깜짝 놀라 얼이 나간 와중에 유민군의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아기악어는 금방 클거에요.”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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