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트 거장 보디츠코 “기념비에 보통사람 영상 쏴 巨人처럼 만들어”

기념관 등 유명 건축물에 사회적 약자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미디어 아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거장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회고전을 갖는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구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전을 위해 만든 신작 '나의 소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파사드(건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 아트’는 현란하다. 당장 경복궁 야간 개장 때 흥례문에 투사됐던 색색의 조명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1980년대부터 건축물 파사드나 공적 기념비 등에 사회를 고발하는 이미지를 투사해 장식적인 파사드 아트의 통념을 전복한 작가가 있다. 폴란드 출신 미디어 아트의 거장 크지슈토프 보디츠코(74)다. 영국 런던 남아공대사관의 정면에 빛났던 나치 문양 십자가, 일본 히로시마 원폭 돔 건물 아래 강둑에 쏜 원폭 피해자들의 손…. 미국과 접경한 멕시코의 티후아나 문화관 돔에는 불법 이민자들의 얼굴을 쐈다. 둥근 돔의 형상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져 분노와 슬픔이 더욱 사무치는 효과를 내게 했던 시(詩)적인 작가 보디츠코.

그가 한국에 왔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갖는 대규모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출국 전날인 지난 6일 서울관에서 그를 만났다.

“관심 있는 건 파사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파사드는 이용한 거지요. 유명 파사드 대부분이 기념건물 아닙니까. 그걸 통하면 평범한 사람도 그 순간 거인처럼 커지며, 거대한 기념비가 될 수 있는 거지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공적 기념비의 권위를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노숙자 수레’ ‘외국인 지팡이’ ‘히로시마 프로젝션’ 등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작가 인생을 중간 결산하는 대표작 80여점이 쏟아졌다. 한국전을 위해 신작 ‘나의 소원’을 내놨다. 브랜드가 된, 기념비에 보통 사람 인터뷰 영상을 투사하는 ‘파사드 아트’의 연장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나의 소원’은 효창공원의 김구 동상을 똑같이 만들고, 그 위에 그가 뽑은 한국의 사회적 약자 13명 대표의 인터뷰 영상을 투사하는 것이다. 세월호 엄마, 탈북자, 귀화인, 해고노동자, 여성예술가 등이다. 어두운 전시실, 그들의 얼굴과 손과 발만이 오려낸 듯 김구 동상의 각 부분에 비치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김구를 통해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디츠코는 작품 제작을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수차례 한국을 찾았다. 광화문 집회도 여러 번 갔다. 이번 작품이 광화문 집회 ‘3분 발언’을 연상시킨다고 했더니 씩 웃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는 그는 한국의 광화문 집회에서 희망을 봤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어요. 자신들의 목소리를 갖기 시작한 거지요. 공공장소에서 이야기하고 세상을 바꾸는 경험, 그것은 특별한 겁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거지요.”

하지만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듯 각자의 영역에서만 목소리를 내고 소통하지 않는 장면은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나의 소원’에 나오는 13명에 태극기 집회 참가자도 포함시켰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겠다는 취지다.

그의 작품 세계의 또 다른 축인 ‘노숙자 수레’ ‘장애인 지팡이’ 같은 디자인과 설치 작품도 대거 나왔다. ‘노숙자 수레’는 뉴욕의 노숙자들이 수레 안에서 잠자고, 수거한 빈병을 담고, 세수까지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다. 이처럼 그의 작품 세계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등 사회 비판의 목소리가 관통한다. 30대에 캐나다로 이민간 그는 현재 고국 폴란드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등 4개 국적을 가진 세계인이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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