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피겨 여제 키워낸 곳… 노후화로 진천에 바통 넘겨

1966년 문을 열어 햇수로 52년째 대한민국 엘리트체육의 산실 역할을 해온 태릉선수촌의 1980년대 모습과 현재의 모습(왼쪽부터). 대한체육회 제공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는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광복 이후 체육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나온 첫 금메달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이런 쾌거는 66년 태릉선수촌의 개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합숙소를 급히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마련했다. 그러나 합숙소만으로는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고 합숙과 훈련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종합적 선수촌 건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체육계에 퍼졌다. 이에 민 회장은 서울 노원구의 태릉 인근을 부지로 점찍었다. 하지만 그곳은 문화재보호구역이었다. 민 회장은 체육계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어 문화재위원들을 끊임없이 설득했고 부지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까지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65년 3월 기공식을 가졌고 66년 6월 30일 공식 개촌했다.

햇수로 52년째인 태릉선수촌의 역사는 오롯이 대한민국 엘리트체육의 역사로 자리잡았다. 마린보이 박태환, 피겨 여제 김연아, 도마의 신 양학선 등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린 대한민국 선수들은 세계무대를 휩쓸고 최강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60년대 조성된 태릉선수촌은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입촌 선수들 사이에 개선 목소리가 높았다. 1980, 90년대 최고의 농구스타이자 현재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허재 감독은 과거 한 방송에 출연해 “합숙 당시 세탁기가 1대뿐이어서 타 종목 선수들과 쟁탈전을 벌였고 무더위에도 숙소 방엔 선풍기가 1대만 있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태릉선수촌에 힘입어 대한민국의 올림픽 성적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해졌다. 88서울올림픽에서 종합 4위(금 12, 은 10, 동 11)의 최고 성적을 달성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종합 5위(금 13, 은8, 동 7)에 올라 뛰어난 경쟁력을 보였다.

국민에게 많은 기쁨을 안겼던 태릉선수촌은 반세기의 역사를 뒤로 하고 오는 9월부터 진천선수촌에 체육 산실의 바통을 넘겨준다. 더욱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태릉이 지정되면서 태릉선수촌이 철거될 가능성마저 생겨 많은 체육인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