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오케스트라와 양성평등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장면. 빈 필은 여성 음악인에 대해 보수적인 악단으로 유명하다. 최근 양성평등 정책을 통해 다수의 여성단원을 선출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악단 내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다. 빈필 제공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가 최근 운영진을 교체했다. 단원들의 비밀투표로 실시된 이번 선거가 주목받은 이유는 악단 내부의 보수적 움직임 때문이다. 2012년 이래 빈필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빈필 단원이 되기 위한 전 단계로 거쳐야 하는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14명의 여성단원을 새로 영입했고, 그 중 10명이 무사히 빈필에 입단했다.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여성단원 평균 증가율은 2015년 0.89%를 기록하며 유럽 및 미국 평균인 0.71%를 추월했다. 이런 변화를 단원들 모두가 기뻐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 선거에는 악단의 급진적 변화를 우려하는 보수주의 시각을 가진 단원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성 평등 문제는 오랜 시간 전 세계 오케스트라의 문제적 이슈였다.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빈필의 95%는 여전히 남자 단원이다. 유럽 주요 악단의 여성 비율은 20% 내외에 머물고 있으며 그나마 영국과 미국은 사정이 나아서 런던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이 최근 40%를 넘어섰다. 이런 현상은 교향악계의 남성 우월적 전통에서 기인한다.

여러 클래식 장르 중에서도 유독 오케스트라는 마지막까지 금녀의 벽을 쉽사리 낮추지 않았다. ‘중산계급 이상의 신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상한 예술’이라는 편견 아래 그 음악을 여성이 연주하는 것은 물론 듣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1997년 빈필에 첫 여성단원으로 입단한 하프 주자 안나 렐크스는 여성 입단을 반대하던 오스트리아 지휘자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무대가 아니라 부엌이다”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감수해야 했다.

이 때문에 여성 단원이 가득한 한국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서양인들에겐 진기한 풍경이다. 남성 단원의 비율이 부천시향은 15%, 서울시향은 35% 미만에 불과하다. 현악파트의 여초현상이 두드러진 가운데 남성 단원들이 주름잡던 금관악기 파트까지 여성이 진출한 것을 볼 수 있다. 서양과 달리 한국 오케스트라는 여성 진출에 꽤 일찍부터 관대함을 보였다. 1961년 KBS 교향악단 기록사진을 보면 이미 현악 파트 곳곳에서 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20세기 초 해외 선교사들이 근대화의 도구로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덕분이다. 1925년 이화여대 음악학부는 국내 최초의 음악전문교육기관이자 해외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여성전문음악인 양성소였다. 이들의 근대적 교육 덕분에 한국 음악인들은 서양과 달리 음악 앞에서 남녀구별이 의미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성시연 장한나와 같은 여성 지휘자가 비교적 이른 시기 배출된 것도 이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평등과 조화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예술을 두고 “고작해야 한 시절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조낸 참담한 음악교육… 그렇다면 그 시절 아프리카 가나나 짐바브웨에서 불렸던 음악도 클래식이라고 해야지 씨바.”라며 거리낌 없이 비하한 인물이 지금 행정관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가 있다.

한참 부적절한 성인식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탁현민은 이 발언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에는 안중도 없는 것은 물론 인종차별적 인식마저 드러냈다. 통합을 추구한다는 이번 정권이 이런 편파적 인식의 소유자를 감싸는 이유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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