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甲일 뿐인데 위세를 부리는 ‘갑질’



이른바 ‘갑질’을 해 대다 큰코다친 이들이 있지요.

갑(甲)은 천간(天干)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첫째로,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그때 그녀의 인기는 단연 갑이었지’처럼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말입니다. 또 ‘이건 갑, 저건 을로 치자’처럼 두 개 이상의 사물 중에 하나를 대신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구분하기 위해 붙이는 일종의 표시이지요.

‘질’은 ‘가위질’같이 어떤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이란 뜻을 더하는 말입니다. ‘주먹질’처럼 신체 부위를 이용한 행위의 뜻을 더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또 ‘딸꾹질'같이 의성어에 붙어 그런 소리를 내는 행위의 뜻을 더하는 말입니다. 질은 또 ‘싸움질’같이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말입니다. 남의 잘못이나 비밀을 일러바치는 ‘고자질’도 있지요. ‘선생질’같이 직업이나 직책에 비하의 뜻을 더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즘 공분(公憤), 즉 대중의 분노를 산 프랜차이즈 문제도 계약서상 본사가 갑, 가맹점이 을이었을 겁니다. 편의상 구분한 ‘갑을’ 관계를 넘어 ‘주종’ 관계로까지 왜곡, 변질되면서 을에게 눈물을 강요하는 ‘갑질’이 생겼습니다.

많은 선량한 갑은 어쩌나요. 갑은 갑이고, 을은 그냥 을입니다. 영원한 갑이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는 것,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이지요. 갑질하는 인간만이 그걸 모를 뿐입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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