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ICBM 등장으로 기존 북핵 공식 사라졌다

북한이 4일 오전 9시쯤(평양시간) 평안북도 방현 일대에서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이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북한은 특별중대보도를 통해 전 세계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북핵 위협을 둘러싼 한반도 안보 지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성명 발표 이후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수십년간 이어져온 도발과 제재, 대화와 보상이라는 북핵 대응 공식은 무의미해졌다는 평가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ICBM 기술을 확보한 이상 협상론이든, 강경론이든 뾰족한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북핵 대응과 관련해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며 선제타격을 포함한 다양한 조치를 언급해 왔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역시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합리적인 대북 옵션은 사라지고 군사적 대응이나 김정은 제거와 같은 극단의 조치만 남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런 초강경 카드는 한반도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갈 수 있어 현실적으로 택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북한의 ICBM 개발이 전략적 균형을 깨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미사일 기술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고, 아직 실전배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핵탄두 탑재 능력을 갖췄는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은 표준화된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만 북한이 ICBM 시험발사 성공으로 미국을 심리적으로 위협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미 언론은 5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ICBM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하면서 ‘중대한 이정표(Milestone)’라는 표현을 썼다.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응이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미국사무소의 마크 피츠패트릭 소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ICBM 발사가 전략적 게임 체인저는 아니지만 미국의 대응 정도에 따라 ‘정치적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선제타격 등 무력 대응에 나설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미국이 북한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압박해야 할 명분과 당위성이 생겼다”며 “국내 정치적 곤경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핵 위협이 미국 국민이 걱정하는 이슈가 되는 상황이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다만 어떤 식의 공격이 됐든 한국과 일본에 대한 위험을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결국은 중국에 더 많은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정부는 최근 단둥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해 미국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하고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는 등 중국을 여러 경로로 옥죄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은 6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주변 국가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해 역내 군비 증강을 불러올 수 있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게임 체인저인줄 알았던 많은 사건 중 진짜 게임 체인저는 하나도 없었다”며 “미국은 이번에도 엄격한 제재를 강조하겠지만 10년간 계속된 대북 제재가 초래한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북한 정권이 붕괴하지 않을 만큼의 압박만 가할 것이고, 북한은 미국 주요 도시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핵 동결을 조건으로 미국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