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더 서클’] 소셜미디어라는 이름의 빅브라더


 
영화 ‘더 서클’은 소셜미디어에 사생활을 속속들이 공개하면서 스타가 된 여성의 이야기다. 세상의 관음적 시선을 비판적으로 살핀 작품이다. 메인타이틀픽쳐스 제공


이 지면에 기고를 시작한 직후,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분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링크한 기사를 봤다는 인사였다. 신문이나 인터넷 포털도 아닌 페이스북이라고? 디지털 세계에서 그리 ‘소셜’하지 못한 나는 그런 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에 어리둥절했다. 그분이 말한 ‘페친’은 내 지인도 아니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는 소셜미디어의 특성을 고려하면, 수천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소위 ‘파워’ 계정에 게시된 글은 웬만한 일간지보다 구독자 수가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

소셜미디어라는 생소한 용어가 입길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그 사이 일어난 사회문화적 변화를 생각하면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새로운 미디어가 늘어나고 대중화 되면서 생겨난 여러 현상들은 영화에도 좋은 소재를 제공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의 창립과정을 흥미롭게 재구성했고,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는 ‘신상털기’를 통한 ‘마녀사냥’이라는 어두운 측면을 조명해 주목받았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제임스 폰솔트 감독의 ‘더 서클’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소셜미디어 열풍이 가져올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그려낸다. 젊고 똑똑한 여성 메이(엠마 왓슨)가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더 서클’에 입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초소형 카메라를 활용해 세계 곳곳의 실시간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취지의 ‘씨체인지(SeeChange)’ 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메이는 자신의 사생활을 전 세계 2억 명에게 낱낱이 공개하게 된다.

데이브 에거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여러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은유가 곳곳에 깔려있다. 드넓고 쾌적한 공원을 연상케 하는 회사 부지와 직원들을 위한 수준 높은 복지 시설, 그들 스스로 ‘캠퍼스’라 칭하는 기업 문화 등은 구글을 명백히 모방한다. 탁월한 프레젠테이션과 카리스마로 청중을 사로잡는 창립자이자 CEO 에이몬 베일(톰 행크스)에게서 스티브 잡스의 그림자를 걷어내기란 쉽지 않다. 메이가 자신의 내밀한 일상을 익명의 대중에게 공개하고 가히 ‘아무말대잔치’라 할 만한 열광적 댓글과 ‘좋아요’를 받는 장면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통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밀은 거짓말이다.” 메이는 ‘씨체인지’ 프로그램 첫 참여자로 자원하면서 신념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할 때만이 진실된 삶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그녀가 받은 수많은 ‘좋아요’의 끝에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조지 오웰은 이미 1949년에 감시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한 바 있다. 소설 ‘1984’에서 사람들은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적힌 포스터와 텔레스크린에 의해 항상 강제로 노출되는 삶을 습관처럼 받아들인 채 살아가게 된다. 소셜미디어가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오늘날, 감시는 오히려 자발성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런 현상에 주목한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 스마트폰이 ‘디지털 파놉티콘(원형감옥)’을 만드는 도구가 될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거대한 원을 이루는 ‘더 서클’사 건물과 빅브라더의 눈동자를 연상케 하는 로고는 그래서 더욱 직설적으로 느껴진다.

여금미 <영화칼럼니스트·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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