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같은 24시간… 황재균, 빅리거 꿈 이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황재균이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 마련된 구단 스프링 캠프장에서 훈련 중 미소를 짓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지난 3일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 새크라멘토 리버캣츠 소속으로 경기에 나선 황재균. 지난 시즌까지 KBO 리그 NC에서 뛰었던 밀워키 브루어스의 에릭 테임즈(왼쪽)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모습. 황재균 인스타그램, 새크라멘토 리버캣츠 홈페이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트리플A 팀 새크라멘토 리버 캣츠 소속인 황재균은 2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엘 파소 사우스웨스트 유니버시티파크에서 여느 때처럼 경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꿈을 좇아 태평양을 건너 이곳에 왔지만 메이저리그 진입은 이제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0.333, 5홈런, 15타점으로 활약했지만 개막전 25인 로스터 진입에 실패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노렸다. 타율 0.287 7홈런 44타점을 기록했지만 아직까지 부름을 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팀 내 최고 신인이자 포지션 경쟁자인 크리스티안 아로요는 지난 4월 콜업됐다. 이틀 전에는 또다른 신인 내야수인 라이더 존스가 올라갔다. 황재균은 특히 존스가 콜업되자 크게 낙담했다. 존스는 트리플A 성적이 타율 0.299, 10홈런, 33타점으로 자신과 비슷했다. 황재균은 “이제 구단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날 점심 황재균은 인터뷰를 통해 내달 1일까지 빅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면 옵트아웃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황재균은 올 초 샌프란시스코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빅리그로 가면 인센티브까지 포함해 최대 310만 달러(35억원)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마이너리그에 머물면 12만5000달러(1억4000만원) 밖에 못 받는다는 계약이었다. 빅리그에 진출하지 못할 경우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릴 수 있는 조항(옵트아웃)을 삽입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11시쯤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 산호세 머큐리뉴스 기자가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그의 옵트아웃 선언 내용을 담은 글을 내보냈다. 황재균은 이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다시피 했다. 옵트아웃을 해도 빅리그 진입에 실패한 자신을 받아줄 구단이 있을지 미지수였다. 지역 언론 보도 이후 한국에서는 황재균이 어느 구단으로 돌아갈지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선택의 시간은 불과 5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튿날 황재균은 구장 숙소 인근 식당에서 통역과 함께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했다. 낮 12시30분쯤 통역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제레미 셸리 샌프란시스코 부단장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황재균은 이제 리버 캣츠 선수가 아니고 샌프란시스코 선수다.”

자신을 빅리그로 콜업한다는 의미였다. 황재균은 잠시 멍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불과 하루 전만해도 포기 상태에 있던 황재균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25일 복귀한 내야수 코너 길라스피가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결원이 생긴 것이었다. 구단은 오후 3시30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정신을 차린 황재균은 부랴부랴 경기장에 가서 짐을 싸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한국에서 FA 계약으로 최소 4년 80억원 이상을 받으며 꽃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메이저리그라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이를 버린 것,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노력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홈구장 AT&T파크의 흙을 밟았다.

그의 빅리그행에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브루스 보치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마이너리거의 승격을 보는 것은 감독으로서 최고의 부분 중 하나”라며 “황재균은 빅리그 입성을 위해 열심히 해왔다”고 반갑게 맞았다. 외야수 헌터 펜스는 “황재균은 주변에 영감을 주는 친구다. 누구도 그의 꿈을 깎아내릴 수 없다”라고 치켜세웠다.

황재균은 28일 낮 12시45분(한국시간 29일 오전 4시45분) AT&T파크에서 열리는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 3루수로 선발 출전한다. 역대 21번째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된 것이다. 특히 한국프로야구 출신으로 마이너리그를 거쳐 빅리그에 입성한 선수는 그가 첫 번째다.

드라마같은 하루를 보낸 황재균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진짜 드라마를 꿈꾼다. 황재균은 “메이저리거를 포기하던 중 연락이 왔다. 팬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이제 정말 즐겁게 야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글=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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