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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우 기자의 재팬 스토리] ‘바둑 대신 장기’ 그들만의 리그 몰두하는 일본



천재 소년 기사(棋士)의 연승 행진에 일본 전역이 들끓고 있습니다. ‘들끓고 있다’는 일본 신문에 나온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소년 기사는 중학교 3학년인 후지이 소타(藤井聰太·14) 4단입니다. 종목은 바둑이 아니라 일본 장기입니다.

지난해 10월 최연소 프로기사가 된 후지이 4단은 데뷔 이후 공식전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지난 26일 29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종전 기록(28연승)을 30년 만에 깬 것입니다.

일본 내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29연승을 하던 날 대국장에 15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고, 신기록 달성 소식은 다음날 거의 전 신문의 1면을 장식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젊은 힘이 새 역사를 만들었다”고 칭찬했습니다. ‘후지이 효과’로 장기 붐도 일고 있습니다. 장기 세트와 어린이용 장기 입문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장기 강좌에 신청이 쇄도한다고 합니다. 후지이가 대국 중 초콜릿을 먹는 모습이 나오자 해당 초콜릿 제조사는 “스폰서 계약도 안 했는데 먹어주셔서 고맙다”며 160상자를 후지이에게 보냈습니다.

천재 소년이 등장하자마자 질풍 같은 기세로 선배 기사들을 꺾어나가는 모습은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합니다. 하지만 반응이 너무 호들갑스럽다는 느낌도 듭니다. 후지이가 최고 고수들을 이긴 것도, 아직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후지이가 두는 장기는 우리가 아는 장기가 아닙니다. 일본 장기는 말의 모양과 게임의 룰이 우리나라 장기와 많이 다릅니다. 바둑은 한·중·일이 같지만, 장기는 3국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바둑은 국제대회가 가능하지만 장기는 사실상 국내용입니다.

후지이에 대한 열광은 한·중·일 바둑 삼국지에서 패퇴한 일본이 국내용 장기에만 몰두하고 자족하는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바둑은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일본에서 꽃을 피워 20세기 후반까지 일본이 종주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요.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처럼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결할 만큼 바둑 실력자는 지금 일본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본 장기가 인간이 AI에 우위를 지키고 있는 영역도 아닙니다. ‘포난자’라는 AI가 진작에 고수들을 꺾었습니다.

도쿄=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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