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학자금 대출의 ‘올무’… 금리 오르면 이자폭탄, 취업 후엔 상환폭탄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지난해 졸업하고 웹툰 작가를 준비 중인 홍기백(가명·29)씨는 최근 금리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본다. 남들보다 경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4학기 동안 받았던 2000만원의 학자금 대출 때문이다. 연 2%대 금리로 취업 후 대출금을 갚는 조건이지만 변동금리인 터라 시중 금리가 오르면 이자도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홍씨는 “언제 웹툰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이자까지 올라 나중에 상환해야 할 빚이 불어날까 심란하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 청년들…‘이자폭탄’ 위협에 노출

홍씨와 같이 학자금을 대출한 청년들이 이자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학자금 대출은 ‘취업후 상환’ 방식과 일반 상환으로 크게 나뉜다. 상환 시기와 방식에 따른 구분인데, 두 대출은 금리 산정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반 상환은 고정금리인 데 반해 취업후 상환은 변동금리 방식이다. 취업후 상환 방식은 금리 인하 시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금리도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금리가 높았던 2010년에는 금리가 5%대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1학기 금리는 2.5% 변동금리였고, 2학기 금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취업에 성공해 상환을 시작할 때까지 시중금리 변동에 따라 빚으로 쌓이는 금액도 달라진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일자리 추경 편성에 나설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화된 점도 부담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사실상 ‘백수’ 상태로 지내는 기간이 늘어난 만큼 금리 부담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청년층이 첫 직장을 잡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개월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시기를 앞둔 상황에서 취업후 상환 방식을 택한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늘었다는 점을 우려한다. 28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에 따르면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 잔액은 2010년 8006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6조7227억원으로 급증했다. 일반 상환 방식이 2조8832억원에서 5조700억원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취업후 상환 방식이 일반 상환 방식을 역전한 이후 격차도 점점 벌어지는 중이다. 취업 때까지 이자 납부를 유예해준다는 점 때문에 취업후 상환 대출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정부는 일반 대출상품에 대해서도 고정금리 상품에 혜택을 주는 등 고정금리 상품 확대를 유도하고 있는데, 정작 낮은 고정금리가 필요한 학생들을 상대로는 정반대의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후 금리가 상승하면 학생들은 고스란히 이자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최근 1조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5년 만에 36.3% 급증했다. 평균 금리는 지난해 3.76%였지만 금리 상승에 따라 2017∼2018년도에는 학자금 대출 금리가 4% 중반대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청년들의 빚 부담이 증폭되면서 ‘제2의 모기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지 언론에서 나오는 중이다.

고작 월 155만원 벌어도 시작되는 의무상환

취업후 상환 대출의 낮은 상환 기준도 문제다. 취업후 상환 대출은 대출자가 취업해 연간 1856만원을 넘는 연소득을 올리게 되면 의무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토록 하고 있다. 연간 소득에서 기준소득(1856만원)을 뺀 다음 상환율 20%를 곱해 나온 금액을 국세청이 원천징수한다. 올해 한 중견기업에 취직해 학자금 대출을 상환 중인 신모(31)씨는 “한 달 20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오는데, 여기서 20만원가량의 의무상환금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며 “특히 수입이 더 적은 수습기간에는 돈이 부족해 급한 대로 부모님 도움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쓰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분포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15∼29세 청년 임금 수준은 월 평균 215만원에 불과했다. 이마저 건강보험·국민연금·직역연금에 가입돼 있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나온 수치다. 취약 근로자 등이 포함될 경우 평균 임금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20대 청년들의 생활비 지출에서 대출 상환이 식비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통계까지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취업후 상환 대출 상환 실적도 나쁜 편이다. 국세청 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819억3700만원의 상환 대상 금액 중 미상환된 금액은 65억5900만원에 달했다. 2012년부터 꾸준히 10% 안팎이 상환되지 않고 있다. 인원별로 따져봐도 상환 대상이 된 10명 중 1명은 상환을 못하고 있다.

지난 26일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질의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심 의원은 “대졸 초임이 월 155만원이면 높다고 생각하느냐, 낮다고 생각하냐”고 한 후보자에게 물었다. 상환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들에게 너무 이른 시점에 상환 의무를 지우는 것 아니냐는 의미였다. 한 후보자는 조정을 살펴보겠다는 답을 내놨다.

공약은 많았지만 실현될까

결국 급한 마음에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힘을 빌린 청년들은 이러나저러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취직이 안 돼도 쌓이는 이자와 변동금리 때문에 불안하고, 어렵게 취직해도 너무 빨리 다가오는 빚 상환 압박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이 내놓은 청년공약에 학자금 대출 관련 언급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 금리를 1.0%로 내리고, 금리산정 방식도 고정금리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냈었다. 또 연소득 1856만원인 대출상환 기준을 2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약속도 내놨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다른 대선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학자금 대출 이자 부담 완화를 청년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또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에 의존하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에 대한 정책도 요구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냈었다. 현재 소득 분위에 따라 국가장학금이 차등 지원되고 있지만 수혜 인원과 금액을 확대해 모든 학생이 반값 등록금 정책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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