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황혼자살, ‘가난의 덫’을 풀어주자…日 예방예산, 60%가 생계비



서울에 살던 박모(95)씨는 노환이 심해지면서 거동이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치매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박씨는 아들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소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 그가 내린 선택이었다. 같은 달 이영희(가명·73·여)씨도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당뇨를 앓던 이씨의 유서에는 몸이 아파서 죽는다는 내용과 함께 주머니에 있는 돈은 아들에게 전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자살률이 크게 높아지는 집단은 70대 이상 노년층이다. 일제 강점기 무렵 태어나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세대. 이들 중 상당수가 역설적이게도 빈곤에 허덕이다 생을 마치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80대 이상 자살률은 10만명당 83.7명으로 가장 높았고 70대가 62.5명으로 뒤를 이었다. 80대 이상의 경우 20대(16.4명)의 5배가 넘었다. 자살을 택한 사람 4명 중 1명은 70대 이상이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월등히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상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인구 10만명당 한국 70대의 자살률은 58.3명, 80대는 72.1명으로 세계 1위였다. 70대 노인 자살자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슬로베니아가 36.3명이었고 80대의 경우 2위 헝가리가 46.7명이었다.

황혼 자살의 가장 큰 이유는 가난이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해본 만 60세 이상 노인 68만6743명 중 27만6587명(40.3%)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소득분배 지표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의 빈곤율은 46.5%다. 노인 둘 중 한 명이 빈곤층이다.

수명은 늘었지만 60대가 되기도 전에 은퇴를 강요받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빈곤해지고 질병과 관계 단절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6일 “빈곤은 건강 문제와 관계의 빈곤을 낳고 자살로 이어진다”며 “연구를 해보면 50만원만 있어도 자살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된 지 10년이 되어 가지만 빈곤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노무현정부에서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은 2008년부터 시행돼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70%가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월 지급액이 20만원에 불과해 큰 효과가 없다. 문재인정부는 노령연금을 내년에는 25만원, 2021년에는 30만원으로 인상하고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를 80만개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장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도 부족한 상황에서 근본 대책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노인 문제에 책임성을 갖는 첫 발자국이란 의미는 있다”며 “하지만 이 자체만으로는 어떤 효과가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노인 자살을 예방할 예산과 인력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올해 보건복지부 정신정책과에 책정된 자살예방 예산은 99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4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해당 부서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은 2명뿐이다. 일본은 2015년 자살예방에 7527억원을 투입했다. 후생노동성에 자살대책추진실을 설치하고 예산의 60%를 저소득층 생계 지원에 사용하고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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