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땅 밟은 北 태권도 시범단 ‘화합의 발차기’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ITF) 명예총재(윗줄 맨 왼쪽)와 ITF 시범단 관계자들이 24일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주관하는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시범공연을 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WTF 어린이 시범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ITF 시범단 방문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남북 교류다. 곽경근 선임기자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주도하는 북한 선수 및 관계자들이 23일 남한 땅을 밟았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첫 남북 교류다. 최근 북한에 억류됐다가 미국으로 송환된 지 엿새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씨 사건과 북한의 의도적인 남한 무시 전략 등 남북 경색 정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스포츠 교류가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대화의 단초를 제공할지 주목된다.

남한 어린이들 따뜻한 환영

ITF 시범단은 세계태권도연맹(WTF)이 24∼30일 주관하는 ‘2017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시범공연을 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방문했다. 북한이 주도하는 ITF가 남한을 찾은 것은 2007년 이후 10년 만이다. 방남한 ITF 시범단 36명 중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ITF 명예총재를 비롯해 ITF 이용선 총재, 황호영 수석부총재, 박영칠 단장과 송남호 감독·선수 등 32명이 북한 출신이다.

김포공항에는 총 50명으로 구성된 WTF 어린이 시범단이 나와 북한 ITF 시범단을 맞았다. 어린이들은 ‘ITF 태권도 시범단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으며 북한 측 시범단에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줬다. 이수민(14)양은 “북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기쁘면서도 매우 떨린다”며 “같은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무언가 통할 것만 같고 기대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의 주목

단순한 태권도 대회이지만 남북 체육인이 모인 만큼 8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과 분산 개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0일 평창 동계올림픽 건설 현장을 둘러본 뒤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고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북한 마식령 스키장 활용 방안과 성화의 북한 구간 봉송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IOC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날 영국 BBC에 따르면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도 장관의 생각에 대해 기쁘게 논의하겠다”며 “올림픽은 언제나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도 장관은 24일 무주에서 열리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북한의 장웅 위원을 만난다. 도 장관은 이 자리에서 평화올림픽 추진을 위한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남북관계 반전 계기 될까

ITF 시범단의 방남만으로 당장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북한은 이번 행사를 제외하고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 등 경색된 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문재인정부의 각종 제안은 모두 거부한 상태다. 최근에는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문답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격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다만 남북관계에 있어 이번 행사가 반전의 계기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는 조심스럽게 나온다. ITF 시범단의 방남은 문재인정부가 지난달 출범 이후 의지를 보여 온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의 첫 단추다. 또 웜비어 사망, 북한의 잇따른 도발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국면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대화를 나눌 장이 될 수 있어 의미가 작지 않다.

여기에 남북 당국자 사이에서 간단한 비공식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통일부에서는 천해성 차관이 24일 행사장을 찾아 상황실을 점검하고 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에서 내려오는 ‘보장성원’ 중 남북관계와 관련해 의사타진을 할 만한 인물이 올 수는 있다. 당국자 간에 상호 관심사 등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입장을 확인하는 간접적 효과 정도는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모규엽 조성은 박구인 기자 hirte@kmib.co.kr, 사진=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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