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비트코인 ‘골드러시’… 끝도 좋을까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프로그래머 한예츠 라즐로는 2010년 5월 18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흥미로운 제안을 적었다. “누구든 피자 두 판을 우리 집으로 보내줄래? 비트코인 1만개로 지불할게.” 저녁식사를 해결할 목적만은 아니었다. 비트코인으로 현물을 구입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발행 1년을 갓 넘긴 신생 결제수단이었다. 디지털 암호화 코드로만 존재하는 가상화폐.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 주로 사용됐다. 현물을 판매하는 상점은 비트코인을 받지 않았고, 피자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즐로에게 주소나 입맛을 물은 사람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피자를 보내지 않았다. 가게로 전화해 주문하고 신용카드를 들고 기다라면 30분 안에 먹을 수 있는 피자를 라즐로는 그날 밤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댓글에 일일이 답하며 비트코인을 받아줄 피자가게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난 같은 달 22일 오후 라즐로의 식탁에 프랜차이즈 P업체의 피자 두 판이 놓였다. 처음으로 비트코인과 현물이 교환된 순간이었다.

비트코인 가치, 7년간 65만배 상승

잭슨빌에서는 매년 5월 22일 비트코인의 첫 현물거래를 기념하는 ‘피자데이’ 행사가 열린다. 올해 7주년을 맞았다. 잭슨빌에서 피자 한 판 가격은 평균 15달러(1만7000원). 라즐로가 피자를 주문했을 때 1BTC(비트코인 단위)는 0.4센트였다. 라즐로가 지불했던 1만BTC를 당시 가치로 환산하면 40달러(4만5000원)다. 피자 두 판 가격에 10달러를 웃돈으로 얹은 금액이었다.

이 피자 두 판의 가치는 7년 뒤 2600만 달러(297억원)로 치솟았다. 비트코인 공공거래장부 ‘블록체인(blockchain.info)’이 실시간 공개하는 ‘환율’에서 1BTC는 22일 현재 2600달러(297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첫 현물거래가 이뤄졌을 때보다 약 65만배 치솟은 셈이다.

비트코인은 호주 컴퓨터공학자 크레이그 라이트의 2008년 논문 ‘비트코인-개인 간 파일공유 전자화폐 시스템’에서 처음 언급됐다. 발행은 이듬해 1월부터 시작됐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고 세금·수수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장점이 있었지만, 정작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 요소는 투자가치였다.

비트코인은 누구든 발행할 수 있는 ‘마이닝 시스템’, 갈수록 희소성을 높인 유통 설계가 언론에 소개돼 유망 투자처로 지목됐다. 이는 사용자 증가와 취급소 확대로 이어졌다. 사용자 증가는 화폐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카시미르 힐 기자는 2013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트코인만 이용해 일주일을 버틴 체험기로 이 가상화폐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이런 가치 상승을 예상하지 못한 일부 사용자는 횡재할 기회를 잃기도 했다. 영국 웨일스의 청년 제임스 하웰스는 2009년 7500BTC를 헐값에 구입해 저장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몇 년 뒤 버렸다. 그 가치가 450만 파운드(65억원)까지 치솟은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쓰레기매립지를 샅샅이 뒤졌지만 하드디스크를 찾을 수 없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하웰스의 사연을 ‘2015년 최악의 실수 10선’ 중 하나로 소개했다.

디지털 광부들의 21세기 골드러시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 거래와 채굴이다. 거래는 다른 사용자에게 물건을 팔거나 현금을 지불하고 비트코인을 받는 걸 말한다. 채굴은 컴퓨터에 마이닝 시스템을 구축하고 블록체인에서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어 비트코인을 캐내는 방식이다. 윤전기로 지폐를 발행하는 것보다 광산에서 자원을 캐는 방식에 가까워 채굴로 불린다.

수학문제의 난도는 비트코인의 공급량을 조절한다. 유통 한계치로 설계된 비트코인 총량은 2100만 BTC다. 지금까지 1600만 BTC 이상 채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통 한계치에 다가갈수록 공급량은 줄고 수학문제는 어려워진다. 발행 초기 10분당 공급량은 50BTC였지만 지금은 25% 수준인 12.5BTC로 감소했다. 수학문제는 공급량 조절에 따라 복잡해졌다.

일반 가정의 컴퓨터 한 대를 사용했을 때 채굴 소요시간은 발행 초기만 해도 일주일이었지만 4년 흐른 2013년에는 7∼8개월로 늘어났다. 다시 4년 지난 지금은 5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예상되는 잔여분은 500만 BTC 이하.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10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규모다. 이마저 2년 안에 모두 채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희소성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비트코인은 지난 4월 일본 정부로부터 합법적 결제수단으로 인정받아 안전성까지 확보했다.

비트코인 채굴 경쟁은 19세기 미국 서부 ‘골드러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다. 중국에서는 수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수십대를 설치하고 월 수백만원씩 전기세를 지불하는 채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마이닝 풀’이다. 각자의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동으로 채굴하고 수익을 나누는 품앗이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이닝 풀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디지털 광부’들이 있다. 서울 은평구의 회사원 김모(35)씨는 트위터에서 만난 4명과 비트코인을 함께 채굴하는 마이닝 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2대씩 모두 10대의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동으로 작업하고 있다. 김씨의 경우 컴퓨터 성능을 높이기 위해 200만원을 들였다고 했다.

김씨는 “한 명당 하루 밀리코인(0.001BTC) 단위로 채굴하고 있다. 돈으로 환산하면 5000원 안팎의 금액”이라며 “수익에 대한 기대보다 비트코인을 직접 채굴해 쌓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게임보다 재미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변동성과 투명성 “블랙튤립 될 수도”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호환성을 높이고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문제는 하루에도 수십 달러씩 요동치는 비트코인 가치의 변동성에 있다. 가치 상승은 투자 동기를 부여해 사용자와 취급소를 늘려 호환성을 높이는 요소지만, 결국 변동성을 키우는 악재로도 작용한다. 이런 모순은 비트코인의 화폐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비트코인 채굴 열풍을 골드러시보다 ‘튤립버블’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튤립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투자 과열현상을 말한다. 당시 관상용으로만 재배됐던 튤립은 귀족·지주들의 투기로 가격이 50배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실제 수요는 많지 않았다. 이 사실이 법원 판결로 드러나면서 튤립 가격은 수천분의 1까지 폭락했다. 문헌으로 남은 인류사 최초의 투기 사례다.

당시 투자 과열은 개량이 불가능한 검은 튤립을 피우겠다는 시도로 이어졌다. 검은색은 자연광을 흡수하기 때문에 생화로 존재할 수 없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꽃만 있을 뿐이다. 검은 튤립은 모호한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는 투기 심리를 상징한다. 화폐 기능보다 투자가치에 시선이 고정된 비트코인 역시 검은 튤립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비트코인의 투명성 확보도 과제다. 비트코인은 사용자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는다.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은신한 아들 김한솔의 신변을 보호했던 탈북지원단체 ‘천리마민방위’는 비트코인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계좌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무기명 자금은 해커나 테러단체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감염 컴퓨터의 파일을 삭제하지 않는 대가로 비트코인 결제를 유도하는 악성 프로그램 랜섬웨어가 대표적이다.

글=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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