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명암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 포스터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콘텐츠산업의 대세다. ‘하나의 이야기나 내용을 다양한 미디어로 전달 또는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인쇄만화들이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로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그 예.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려 애쓸 필요 없이 하나의 이야기나 내용을 이런 저런 포맷으로 바꿔가며 소뼈처럼 우려먹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르다. 소비자도 익숙한 이야기가 새로운 그릇에 담겨 마치 새로운 요리처럼 입맛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지만 때로는 원작을 크게 훼손한 멀티 유즈에 실망감과 혐오감마저 느낀다.

최근 후자에 속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봤다. 영화 ‘공각기동대(루퍼트 샌더스, 2017)’와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미카엘 뒤독 드 위트, 2016)’이다. 일본 SF 아니메의 전설을 할리우드가 실사영화로 만든 ‘공각기동대’는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존재이유가 불분명하다. 원작 아니메의 철학적인 내용을 거의 담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해석도 없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 인간의 정체성 문제 등을 천착한 아니메와 달리 영화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액션에 치중했다.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은 무인도에 표류한 선원의 이야기다. 그 내용은 마치 동화나 환상 같다. 이 선원은 무인도에서 뗏목으로 탈출하려다 붉은 바다거북이 이를 자꾸 방해하자 거북을 살해한다. 죽은 거북은 젊은 여인으로 변신한다. 선원은 이 여인과 짝을 이뤄 아들까지 낳고 같이 섬에서 살다가 평화롭게 늙어죽는다. 그러자 여자는 다시 거북으로 변해 바다로 돌아간다. 마치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설마 실사영화로 만들지야 않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즉각 포기할 것을 권한다. 그 자체로 최선인 것을 굳이 개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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