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이끄는 강소기업] ‘솔더볼’국산화 성공… 세계 넘버2 기업 도약

덕산하이메탈 직원이 주력제품인 솔더볼 완제품 출하에 앞서 포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위 사진). 울산 효문산업단지에 있는 덕산하이메탈 본사 전경(가운데 사진), 반도체 칩과 전자회로기판을 연결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공 모양의 초정밀 부품인 솔더볼과 포장 용기(아래 사진). 덕산하이메탈 제공
 
이준호 회장


울산의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있지만 울산의 강소기업인 덕산 하이메탈㈜(회장 이준호)은 독보적인 기술력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이 주력 산업인 울산에서 이례적으로 반도체 등 IT 소재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울산 북구 효문산업단지에 있는 덕산하이메탈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솔더볼(solder ball)을 만드는 업체다.

솔더볼은 반도체를 패키징할 때 반도체 칩과 전자회로기판(PCB)을 연결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공 모양의 초정밀 부품이다. 전자제품이 점점 소형화되고 집적화됨에 따라 솔더볼의 수요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덕산하이메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반도체 업체들에 솔더볼을 공급하고 있다. 제품 크기는 100∼200㎛(마이크론·100만분의 1m)부터 30∼70㎛까지 다양하다. 솔더볼 중에서도 크기가 머리카락보다 작은 150㎛ 이하인 초소형 솔더볼을 마이크로솔더볼(MSB)라고 한다.

덕산하이메탈이 만드는 솔더볼은 정확한 크기와 높은 구형도를 갖췄다. 주석 등 합금에 열을 가한 뒤 특수 공정을 거쳐 초당 2만개 이상을 생산한다.

창업주인 이준호(70) 회장은 부산대 경제학과 3학년 때 행정고시를 준비했다가 실패하고 1972년 현대중공업 공채 1기로 들어갔다. 현대모비스가 된 현대정공으로 1978년 옮겨 자재부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1982년 조선기자재기업인 덕산산업을 설립해 조선기자재 부품을 제작 생산했다.

덕산산업은 사업 초기 실적이 점점 불어났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상황이 어려워졌다. 당시 이 회장은 은행에 갔다가 창구에 붙어있던 ‘이노베이션, 이것이 기업을 영속하게 하는 것’이란 글귀를 발견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이 회장은 덕산산업의 업종을 도금으로 바꿨고 회사는 국내 유일의 용융 알루미늄 및 아연 도금업체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이 회장은 새로운 도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9년 벤처기업인 덕산하이메탈을 설립했다. 덕산하이메탈이 솔더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울산대 재료금속공학부 신소재 연구팀과 공동 개발에 나서면서부터다. 이 회장은 이때 10여년 간 회사를 운영하며 모은 재산을 솔더볼 개발에 모두 쏟아 부었다.

초기부터 개발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솔더볼 개발 당시 밤낮이 따로 없었다고 할 정도로 연구에만 몰두했다”고 회고했다.

덕산하이메탈 설립 당시 솔더볼 세계시장은 일본 기업 센쥬메탈이 독점하고 있었다. 덕산하이메탈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2005년 솔더볼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덕산하이메탈은 창립 6년 만에 세계 3대 솔더볼 생산업체로 급성장했고 2012년에는 세계 점유율 30%대로 올라서 센쥬메탈에 이어 글로벌 2위 업체가 됐다.

창업 시 3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약 600억원대로 성장했다.

덕산하이메탈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에도 주목했다. 2008년 화학소재사업부를 인적 분할해 덕산네오룩스를 설립하고 루디스(현 네오룩스)를 인수해 OLED 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덕산네오룩스는 현재 특허 168건을 확보했고 현재 615건을 출원 중이다. 토종기업으로서 미국의 다우케미컬(Dow)과 유니버설디스플레이(UDC), 독일의 머크(Merck) 등 글로벌 기업들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올해 1000억원대에 육박하는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전문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OLED패널 시장은 2014년 87억 달러(10조2834억원)에서 2022년 291억 달러(34조3962억원)로 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덕산하이메탈과 덕산네오룩스는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해 차세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덕산하이메탈은 울산시와 한국화학연구원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반도체 칩의 전자파 간섭현상을 차단해 주는 반도체용 열전도성 전자파 차폐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전자파 차폐 소재 중 전도성 코팅 분야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6년 2조2000억원에서 2021년 2조7000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덕산은 하이메탈과 네오룩스를 합쳐 2020년 매출 1조6000억원, 영업이익률 20% 달성을 통해 명실상부한 소재부품산업의 지배자가 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준호 회장 “실패 두려워하지 않아야 혁신할 수 있어”

“기업을 영속하게 하는 힘은 이노베이션(Innovation·혁신)이며, 혁신의 전제는 미래지향적인 자세입니다.”

이준호(70) 덕산하이메탈㈜ 회장은 2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속적인 혁신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속적인 도전의 자세에서 비롯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회장의 집무실에는 ‘천지지대덕일생(天地之大德日生)’이라는 글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천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라는 뜻의 주역 구절로 혁신에 대한 이 회장의 생각이 응축돼 있다.

그는 “혁신을 위한 도전이 실패하더라도, 실패는 새로운 가치를 위한 또 다른 시작이며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을 일상화할 때 장기적으로 기업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내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면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외부기술을 도입해 혁신을 지속했다”며 “이것이 솔더볼과 OLED 소재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속적인 R&D 투자를 덕산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차세대 먹거리를 찾기 위한 R&D에 집중해왔다”며 “숱한 좌절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해마다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소재 분야 한우물만 파왔다”고 말했다.

덕산하이메탈은 순수 개발인력만 60명으로 전체 직원의 약 38%에 달한다. 개발 지원 부서까지 포함하면 연구 관련 인력이 절반이다.

이 회장은 “미래 발전인자를 찾지 못하면 영광은 잠시일 뿐”이라며 “소재산업에서는 연구개발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수 인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덕산하이메탈은 2005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직원에게 우리사주를 액면가에 배정하고 셋째아이의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회장은 “핵심 인재들이 많이 성장하고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주고 있다”며 “진급 연한에 구애 받지 않고 발탁인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덕산은 2020년 끊임없이 도전하는 소재부품 1위 창조기업으로 명실상부한 소재부품산업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며 “전자소재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타소재 부품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미래소재부품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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