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 악당이 되지못한 신파조 ‘악녀’





‘남자란 무엇인가.’ 지난주 가장 많이 회자된 책 제목일 것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작년에 출간했다는 이 책에 담긴 성에 대한 저급한 인식은 자질에 대한 의구심에 불을 붙였다. 이에 더해 거짓 혼인신고와 아들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결국 지명 닷새 만에 자진사퇴로 마무리됐다. 이 때문에 관심을 빼앗겨버린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책 ‘남자사용설명서’로서는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여성 비하에 관해서라면 한 수 위인데, 저자에게 끼친 영향은 미미했으니 말이다.

이번 학기엔 영화기획 관련 강의를 맡았다. 대학생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진 키워드는 단연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었다. 지난해 100만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6편 뿐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스크린에서조차 남성들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현실. 어떻게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꽤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누군가 발표한 ‘여성 영화’ 기획안이 발단이 되었다. 한국영화에서 시도된 여성 주도 액션 영화는 늘 실패해왔으니 대중에게 친숙한 멜로드라마 장르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더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는 반박이 제기되면서 강의실의 공기는 뜨겁게 달궈졌다.

개봉 전부터 ‘여성 원톱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던 ‘악녀’를 보러 가는 마음은 그래서 더욱 조마조마했다. 편견을 깨고자 하는 미래의 영화기획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랐다. 게다가 ‘악녀’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 설정인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인칭 슈팅게임의 형식을 차용한 도입부를 비롯해 현란한 액션 장면들은 흥미로웠다. 비록 뤽 베송 초기작인 ‘니키타’와 ‘레옹’,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악녀’다. 정의나 선을 위해 싸우는 전통적 영웅이 아닌, 어둡고 파괴적인 힘으로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안티 히어로’ 혹은 ‘악당’은 때로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는 어떤가. 인간의 근원적 욕망과 충동, 증오와 사악함의 화신은 우리에게 혐오와 연민이라는 양면적 감정을 불러일으킬수록 매혹적인 존재가 된다. 안타고니스트(적대자)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주인공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미국 TV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의 경우도 그러하다.

제목과는 달리 ‘악녀’의 주인공 숙희는 이러한 악당이 되지 못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키워진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복수’에 있다. 그러나 그 파괴적 욕망은 ‘국가권력에 이용당하는 가련한 모성’의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다. 숙희는 자신을 조종하는 국정원 직원에게 “저한테 왜 이러세요?”라며 울먹이듯 묻는다. ‘악녀’에겐 결코 어울리지 않는 한 마디다. 매력적일 수도 있었던 인물을 주저앉혀버리는 신파의 힘이여.

김기영 감독은 이미 1960∼70년대에 ‘하녀’ ‘충녀’ 등을 통해 자신의 욕망에 섬찟하리만치 충실한 여성 악당을 창조해낸 바 있다. 프랑스 고전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의 이야기로 번안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원작의 메르퇴이유 부인에 상응하는 조씨 부인(이미숙),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이영애) 등은 육체성이 강조된 액션이나 신파에 기대지 않아도 막강한 어둠의 힘을 지닌 악녀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들이 보여준 것은 낡은 관습과 질서라는 악을 전복시키기 위한 또 다른 악의 힘이다. 우리에게는 더욱 많은 악녀가 필요하다. 좀 더 과감하고 독해질 필요가 있다.

여금미<영화 칼럼니스트·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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