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꽃향기 품은 부채

김종학 ‘꽃과 나비’. 1997


동그란 부채 위에 모란꽃이 활짝 피었다. 부채를 손에 쥐고 흔들면 꽃향기가 사방으로 퍼질 듯하다. 꽃에 앉아 있던 나비도 파르르 날아갈 것만 같다.

어린아이 그림처럼 어눌하지만 더없이 생생하고 정겨운 부채그림을 그린 이는 ‘설악산 화가’ 김종학(80)이다. 30년 넘게 설악산에 머물며 설악의 꽃과 새, 산과 폭포를 그려온 김종학은 소반이라든가 부채에도 즐겨 그림을 그리곤 했다. 영감이 떠오르면 그 어느 것이든 화가의 화폭이 됐다.

부채에 그림을 그린 것을 화선(畵扇), 글씨를 쓴 것을 서선(書扇)이라 한다. 우리 선조들은 더위가 몰려오기 전인 단오절에 화선과 서선을 주위에 선물하곤 했다.

국왕 또한 화원들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하사하곤 했다. 그림과 글씨를 감상하면서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였다.

자고로 부채그림은 재빨리 간략하게 그리는 게 특징이지만 정성을 다한 것도 꽤 많아 귀하게 애장했던 선면화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김종학의 부채그림에선 조선시대 민화가 떠올려진다. 이름 없는 화가들이 그려냈던 민화의 그 풋풋한 미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김종학은 민화와 목기, 민예품을 뜨겁게 사랑하고 수집했던 컬렉터다.

자신의 목기 컬렉션 중 수작 3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김종학의 그림이 한국적 전통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옛것에 대한 애정과 그로부터 받은 영감이 오늘 우리와 즐겁게 만나고 있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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