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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 “난 아직 순수함을 갖고 연기하는 사람” [인터뷰]

영화 ‘하루’에서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선보인 김명민. 그는 “연기자의 길은 험난하다.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원하는 걸 얻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그것을 얻어낸 순간부터는 잃는 게 생긴다”고 말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김명민(45)은 쉬운 길을 골라갈 줄 모른다.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계산하거나 따지는 법이 없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타임루프(time loop) 소재의 영화 ‘하루’ 역시 고생길이 훤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이야기에 꽂혀서”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이 작품은 힘들겠다’는 게 눈에 딱 띄어야 하는데 제가 그걸 잘 못 봐요. 두 번째 읽을 때쯤 보이는데 그땐 이미 꽂힌 거죠. ‘어떡하지. 아, 근데 하고 싶다.’ 저는 아직 순수함을 갖고 연기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내 입으로 이런 얘기하기 좀 그렇지만(웃음).”

‘하루’에서 김명민이 연기한 의사 준영은 교통사고로 딸을 잃는 비운의 아버지. 한데 매일 눈을 뜨면 사고 발생 2시간 전으로 되돌아간다. 딸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것이다. 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 민철(변요한)과 함께 그 끔찍한 하루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이 영화에 출연하기까지 굉장히 고민이 많았다”면서 “결정하고 나서도 ‘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두 번 정도 더 했다. 이렇게 망설여졌던 적은 루게릭병 환자를 연기한 ‘내 사랑 내 곁에’(2009) 이후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장면 촬영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한 로케이션 당 길게는 3주간 진행됐다. 주 촬영지였던 인천 송도 박문여고 사거리는 지금도 피해 다닐 정도다. “현장에서 ‘우리 진짜 타임루프 돌고 있는 거 아니야?’ 농담한 적도 있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죠.”

가장 고민스러운 지점은 하루가 거듭되면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감정선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매 신마다 ‘혼란’ ‘갈등’ ‘현실 인지’ ‘새로운 전략’ ‘절망’ ‘포기’ 등 키워드를 설정해 촬영에 임했다. 김명민은 “거대한 자본력을 갖춘 할리우드 타임루프 영화들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지만 우리 영화는 배우의 연기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연기 안 되는 배우가 들어오면 큰일 나는 거였어요. 그래서 ‘육룡이 나르샤’(SBS·2015)에서 호흡 맞췄던 후배 변요한을 제가 추천했죠. 배우의 연기력과 감독님의 철저한 연출력, 그 두 가지가 우리 영화를 좌우하는 요소였어요. 근데 결과물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더라고요. 가성비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웃음).”

1996년 SBS 공채 탤런트 6기로 데뷔해 조·단역 작품을 여럿 거친 김명민은 ‘불멸의 이순신’(KBS1·2004)을 통해 빛을 봤다. ‘하얀 거탑’(2007) ‘베토벤 바이러스’(이상 MBC·2008) 등에서 자타공인 연기력을 각인시켰다. 현장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잘 아는 그는 늘 촬영 전 일찌감치 도착해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한다.

“분주한 스태프들과 농을 나누거나 감독님과 촬영 관련 얘기를 나누거나. 다들 지쳤을 땐 확 분위기를 띄워주기도 하고요. 그런 게 주연배우의 몫인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일수록 더 절실히 느끼고 있죠. 모두가 즐겁고 편안하게 일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김명민은 인터뷰마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유를 물으니 “내 자신에게 자꾸 암시를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 가야할 때를 망각할까봐서요. 전 ‘죽을 때까지 연기하겠다’는 주의는 아니거든요. 그렇게까지 할 자신이 없어요. 가늘고 길게 가느니 짧고 굵게, 멋지게 떠나고 싶네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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