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모바일뱅킹 시대 ‘디지털 난민들’ 은행 찾아 고생길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김모(71·여)씨는 올해 초부터 매달 15일이면 10분씩 더 걷게 됐다. 15일은 김씨의 자녀들이 용돈을 보내주는 날인데, 동네 상가에 있던 은행 지점이 사라져 가장 가까운 이웃 지점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5분 거리가 15분으로 늘었다. 김씨는 계좌조회, 이체, 공과금 납부 등 모든 은행 업무를 은행 영업점포 창구에서 본다. 한 달에 못해도 4∼5번은 은행 창구를 이용한다. 자식들이 사준 스마트폰이 있지만, 문자메시지도 벅찬 김씨에게 모바일뱅킹은 꿈도 꾸기 어렵다.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융복합 서비스)의 발달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이 편해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24시간 365일 모바일뱅킹 시대가 열렸다. 새벽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듯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도 가능해졌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지점을 찾지 않아도 조회·이체뿐만 아니라 공과금 납부, 대출까지 가능하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모바일뱅킹을 포함한 인터넷뱅킹 이용건수는 하루 평균 9412만건에 달한다. 일평균 이용금액도 41조9189억원이나 된다. 지난해부턴 전체 금융거래의 80% 이상을 인터넷뱅킹이 차지하고 있다.

24시간 365일 모바일뱅킹 시대의 그늘

하지만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김씨 같은 고령층이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연령별 모바일뱅킹 이용비율은 극심한 차이를 보였다. 30대는 지난해 말 기준 62.1%가 모바일뱅킹을 이용해 전 세대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반면 60대 이상은 13.7%만이 모바일로 은행 업무를 봤다. 이마저도 전년(4.7%) 대비 9% 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학력도 큰 영향을 끼쳤다. 대학교 졸업자(56.5%)와 대학원 이상 졸업자(61.2%)의 절반 이상이 6개월 이내에 모바일뱅킹을 사용했다고 답한 데 비해 ‘고졸’자는 37.7%가 모바일뱅킹을 사용했고 중학교 졸업 이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4.6%만이 모바일로 은행 업무를 처리했다.

그런데 시중은행의 점포는 줄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SC제일·한국씨티은행 등 6개 시중은행 점포는 4068개다. 이는 지난해 말(4144개)보다 76개나 줄었다. 2012년(4808개)과 비교하면 5년 만에 740개의 지점이 사라졌다. 자동화기기도 감소한다. 6개 시중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ATM)기는 2015년 말 2만9249개였는데 1년 만에 2만7739개로 줄었다. 모바일뱅킹을 포한한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찾을 수 있는 방법이 계속 줄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중은행들은 모바일뱅킹이 낯선 고령층을 위한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섰다. 줄어드는 영업점포로 생긴 공백을 새로운 서비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고령층 전담 상담가를 배치해 고령 상담자의 상담요청 내용을 확인한 뒤 은행에서 전화를 거는 ‘전화올림 서비스’를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시니어 전용 모바일 플랫폼 ‘골든라이프 뱅킹’을 출시했다.

시중은행 애플리케이션 장애인 접근성 60점 미만

장애인은 핀테크라는 시대적 흐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인권포럼과 충북대학교 김석일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8개 시중은행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장애인 접근성은 평균 55.8점에 그쳤다.

연구팀은 국가표준인 모바일 앱 콘텐츠 접근성 지침 2.0을 기준으로 앱을 조사했다. 이 지침은 장애인과 고령층 등 취약계층을 위해 영상이나 음성 외에 자막과 수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은행 모바일 앱이 기준 미달이었다. 특히나 첫 화면에 과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상하스크롤이 빈번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사용하기 어려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라는 점은 거의 모든 은행 앱이 공통으로 지적받았다. 또 자막이나 수화 등의 제공, 초점·명도 등도 미흡했다. 보고서는 “대부분 은행 모바일 앱 접근성이 60점 미만으로 장애인의 원활한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또 인터넷뱅킹으로 금융거래를 할 때 전화 통화를 이용한 ARS 본인 인증도 청각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말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을 대상으로 ‘청각장애인의 인터넷뱅킹 금융서비스’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5개 은행 모두 단말기 지정 신청을 하려면 ARS 인증이 필요했고, 3곳에선 개인정보 변경, 공인인증서 등록, 계좌이체 등을 위한 ARS 인증이 필수였다. 때문에 농아인협회 관계자는 지난 2월 17일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장애인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한 간담회’에서 “청각장애인은 본인 확인을 위한 자동응답시스템 인증방식을 이용할 수 없어 애로가 있다”고 호소했다.

“금융거래 소외계층 접근성 높여야”

이런 핀테크 소외계층 문제는 민관이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 총재는 “스마트폰뱅킹 등 디지털 기술 확산은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금융소외 계층을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며 “디지털 기술 발전이 계층 간 격차를 확대시키지 않도록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디지털 금융시대의 금융 소외 심화’ 보고서를 통해 “대면채널만을 이용하는 사회적 약자의 불편은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도 온라인 전용상품 접근이 어려워 정보 비대칭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백 연구위원은 “금융 포용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요구됨에도 이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금융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설계해 실질적인 정책효과가 나타나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금융 당국은 가이드라인 마련과 모범사례 공유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금융사는 하드웨어적 개선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생애주기별 여건 변화 등 중장기적 요소를 고려한 정보 제공과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