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소통은 이렇게”





지난 7∼8일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O)가 7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재미교포 악장 데이비드 김 때문에 한국 팬들이 남달리 정을 주는 악단이다. 예민한 청중은 일반 악장들과 다른 데이비드 김의 자세에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입장하자마자 그는 보면대를 마주보고 있던 자신의 의자를 객석 방향으로 틀어서 앉았다. 눈은 악보와 지휘자를 보고 있지만 몸은 비틀어서 객석을 향하고 있는, 연주하기 참으로 불편해 보이는 자세다. 흥미롭게도 공연 중 악장과 똑같은 자세로 연주하고 있는 단원들이 구석구석 눈에 띄었다.

이런 단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커튼을 걷어내자”(Raising the invisible curtain)라는 PO 캠페인의 흔적이다. 전 음악감독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시작한 이 캠페인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거하자는 모토로 시작한 대중친화 프로젝트이다. 가령 악단의 홍보 영상은 단원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퇴근 후 어질러진 집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 오토바이 튜닝이 취미인 속도광으로 변신한 단원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고상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1류 솔리스트가 되지 못할 것을 깨달은 좌절의 순간 악장의 역할이 내게 찾아왔다”라는 데이비드 김의 담담하고 인간적인 고백 또한 이 홍보영상을 휴먼 다큐멘터리로 착각하게 만드는 감동 포인트다. 연주 중 악장의 트위스트 자세는 관객과 마주 앉아 소통하겠다는 악단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스처다.

이런 PO의 시도는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다. 엘리트 문화 위에 세워진 여느 오케스트라와 달리 PO는 1900년 창단 때부터 대중과의 소통에 주력해왔다. 이 악단은 10센트만 내면 누구나 입장 가능한 청소년 음악회와 노동자 음악회를 조직했다. 여성 참정권이 헌법으로 보장되기 전인 1904년에는 오케스트라로서는 세계최초로 ‘여성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매주 금요일 여성 관객을 위한 마티네 콘서트도 최초로 개최했는데 부작용이 따랐다. 주부들이 공연 도중 매번 전철 시간에 쫓겨 장바구니를 부스럭거리며 빠져나가는 통에 당시 지휘자 스토코프스키가 퇴장하는 주부들에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PO는 특히 미래 관객인 어린이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1921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연주할 때는 어린이 관객들을 위해 진짜 코끼리를 무대 위에 데려왔다. 1940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영화음악에 참여하면서 PO와 스토코프스키는 범국민적인 인기악단의 반열에 올랐다. 스크린에 실루엣으로 등장한 지휘자가 미키마우스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대중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지도자의 유연한 소통의 능력을 상징한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이런 지휘자와 악단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황이 미대륙을 휩쓸던 1929년 필라델피아 거리에는 ‘오케스트라를 구하라’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100만 달러의 성금을 모아 악단을 살렸다. 지난 2011년 미국 악단 최초로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창단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던 이 악단은 새로운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과 함께 1년 만에 회생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지휘자와 단원, 무대와 객석 사이의 생동감 넘치고 풍부한 교감은 PO가 지켜낸 것이 그들의 시그너처인 ‘벨벳같은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전부가 아님을 입증했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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