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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30주년] “1만950일간 한열이는 늘 내곁에…” 어머니 배은심씨 인터뷰



“아들을 잃은 어미가 30년 전 오늘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전 1만950일간 혼자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디를 가더라도 늘 아들과 함께였죠.”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던 고(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77) 여사는 9일 서울 종로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사무실인 ‘한울삶’에서 가슴 속에 담아놨던 말을 털어놓았다.

배 여사에겐 아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먼저 1987년 5월 8일 광주 동구 지산동 자택으로 보낸 편지에서 ‘엄마, 내년 어버이날에는 꼭 카네이션을 달아드릴게요’라고 쓴 약속을 왜 지키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해마다 5월이면 장미꽃 만발한 담장 아래에서 아들이 보낸 편지를 다시 보며 기다렸는데, 지난달에도 약속을 어겼네요.”

다른 한 가지는 그 해 6월 6, 7일 연휴를 맞아 광주에 내려왔던 아들이 하룻밤 자고 서울로 올라가며 한 약속이다. 옷에서 최루탄 냄새가 나길래 ‘데모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앞장서지 말고 뒤에서 하라’고 당부하자 아들은 “예 엄마, 걱정 마세요. 저는 절대로 앞장서지 않아요. 방학하면 바로 내려올게요”라고 답했다. 배 여사는 그때 왜 거짓말했느냐고 묻고 싶다.

배 여사는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도 고백했다. 아들이 상경한 이튿날 연세대 시위가 격렬해진다는 뉴스를 듣고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가 놓은 일이다. “(한)열이가 셋째 누나와 전철 1호선 개봉역 인근 빌라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어요. 9일 아침 걱정돼서 한열이한테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려고 했다가 남편이 ‘엊그제 얼굴 봤는데 뭘 또 비싼 시외전화를 거느냐’고 하는 바람에 들었던 수화기를 내려놨거든요. 그날 아침 통화만 했더라면….”

배 여사는 아들이 세상을 뜬 뒤 집을 나섰다. 민주화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곳의 선두에는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는 투사가 된 그는 98년부터 2년간 유가협 회장을 맡아 420일이 넘도록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인 끝에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단다. 그러나 ‘화해와 용서’도 중요하지만 ‘사죄와 사과’가 먼저라는 것을 안다. 그는 “20대 국회와 문재인정부는 비양심적인 적폐 세력을 함부로 사면해주거나 복권해주면 안 된다”고 피력했다.

그에게는 앞으로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가 있다. 민주화운동 중에 희생된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민주화유공자법’이 제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그로서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왼쪽 무릎 관절에서 ‘뚝뚝’ 소리가 나는 등 건강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6개월 후 무릎 수술도 잡혀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생각하면 활동을 멈출 수 없다. 자신의 다리로 걸을 수 있는 한 계속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일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돌이켜보면 아들이 떠난 뒤 나 자신이 살기 위해 망월동에서 광화문 촛불시위까지 겁 없이 다닌 것 같다. 늘 한열이와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면서 “그동안의 삶에 후회는 없지만 가끔 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을 때 가슴을 치며 우는 것밖에 할 게 없어서 힘들다”고 말했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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