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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러 배후는 사우디와 미국… 복수하겠다”



카타르 봉쇄 사태 와중에 터진 이란 테헤란 연쇄테러로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뿌리 깊은 종파 갈등이 다시금 노골화되고 있다. 특히 시아파 맹주인 이란 정부가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을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해 ‘보복’을 공언하면서 중동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이란 보복 다짐

중동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란 최정예 혁명수비대(IPRG)는 7일(현지시간) 성명서를 통해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은 미국 대통령이 테러를 지원하는 중동 후진국(사우디) 정부의 지도자를 만난 지 1주일 뒤에 일어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트위터에 “테러를 후원하는 폭군들이 조국으로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일찍이 이란 정부는 “수니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사우디 왕조가 수니파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IS의 후원자”라고 주장해 왔다.

IPRG는 이어 “우리는 항상 무고한 이들이 흘린 피에 복수로 답했다”며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했다. 수비대 부사령관 호세인 살라미 준장도 이란 언론에 “우리 국민을 순교자로 만든 테러리스트와 추종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란이 두 나라에 대한 직접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신 이란이 IS 격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선 호메이니 영묘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시아파 과격 분파를 동원해 사우디의 성지를 겨냥한 보복 테러를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에 이란 최정예 특수부대 쿠드스 여단 소속 병력을 투입하는 방안도 예상된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창설된 쿠드스 여단은 특수전사령부와 정보사령부가 결합된 형태로 1만5000명 규모로 추산된다. 이 부대는 IS 격퇴전에서도 큰 활약을 했다.

한편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이 이슬람의 만성적인 종파 갈등을 결과적으로 조장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란 테러 이후 미국이 보인 태도부터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 세계가 이란 테러에 규탄 성명을 낼 때 미 백악관은 “우리는 테러를 후원하는 국가들이 그들이 조장하는 악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며 도리어 이란 정부의 ‘자업자득’이란 취지의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1400년 이어온 종파갈등 재연 조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오랜 갈등구도에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동 정세의 ‘잠재된 뇌관’인 두 종파의 갈등은 1385년 전인 서기 6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사망하자 두 종파는 무함마드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무슬림 공동체(움마)의 ‘순나(관행)’를 따르는 사람을 의미하는 ‘순니’를 자처해 수니파의 기원이 된 이들은 무함마드의 교우였던 4명의 칼리프(아부 바크르·오마르·오스만·알리)들이 차례대로 신정일치 권력을 이어가는 것을 인정했다.

이에 알리(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의 추종자들은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혈통만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에서 ‘시아트 알리’라고 불렸고 이후 시아파의 뿌리가 됐다.

두 종파의 알력 다툼 속에 4대 칼리프 알리가 661년 이라크 쿠파에서 암살되면서 양 종파 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됐고,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680년 이라크 카르발라 전투에서 전사하며 두 종파는 끝없는 ‘적대의 평행선’을 달리는 숙명에 빠져들었다. 전체 이슬람교도 중 85%를 이루는 수니파가 다수이고 시아파는 15%다.

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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