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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囚人’ 마침내 출소하다… 황석영 ‘수인’ 출간



그의 수인(囚人) 생활은 이제 끝난 것인가.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소설가 황석영(74)이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자전(自傳) ‘수인 1·2’(문학동네)을 출간했다.

황석영은 8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수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 같은 한반도에서 작가로 살았던 나는 언제나 수인처럼 위태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수인은 내가 갈망했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붙인 반어적 표현이다. 제목 ‘수인’은 ‘자유란 무엇인가’로 바꿀 수 있다”고 전했다.

머리칼은 희끗했지만 분명한 어조에서 강골(强骨)이 느껴졌다. 자전은 수감기간을 ‘현재’ 시점에 두고 과거 기억을 더듬는다. 한국전쟁,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방북과 망명…. 숨 가쁜 시간들이다. 황석영은 “자전은 개인 삶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대인과 공유한다는 뜻이 있다. 또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간직될 자료”라고 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을 총괄 지휘했다. 1989년 방북 후 망명했고 한국에 돌아와 5년 동안 수형생활을 했다. 황석영은 석방 후 생활에 대해 “모두 재기 불가능하다고 수군거렸지만 나는 그래도 독자들이 날 먹여 살릴 거라고 생각했다. 다 잃은 노름꾼이 새벽을 바라 듯”이라며 슬며시 웃었다.

쉰여덟 출소 당시 그의 통잔 잔고는 760만원. 이후 그는 글쓰기로 살아남았다. 그는 자기 삶을 ‘문학적’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감히 잘난 척을 하자면 내 인생과 작품은 합체돼 있다. 엇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나의 집이었다. 먼 길 떠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집. 언제라도 나는 문학이란 집을 잊은 적이 없다. 늘 불빛처럼 끌고 왔다.”

그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묻는 질문에도 문학이라고 답했다. “베트남 참전 때인 거 같다. 전투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여기서 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황석영은 그 기도대로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 ‘개밥바라기별’ 등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썼다.

북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의 ‘농성체제’를 풀게 해야 한다. 2000년 6·15선언 이후 멈춰있다. 당시 미국 부시 정부가 북한을 제재했기 때문에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으로) 미국을 향해 농성을 하고 있다. 북한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들의 국가가 아니라 현대의 산물이다. 휴전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는 아주 긴 시간 자유와 억압의 현장을 지켜봤다. 황석영이 열아홉 살 소년이던 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테타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촛불 시위에 나갔다.

황석영은 “올해 봄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걸 봤다. 내 나이 일흔 다섯이다. 그러니까 대장부 한 평생 한국현대사가 평탄치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도 어떤 세상이 만들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희한하게도 지난해 겨울 숟가락도 들 수 없이 아팠던 그의 오른팔이 올봄부터 나았다.

그는 “6·10민주항쟁 후 87년 체제는 불완전하다. 우여곡절 끝에 촛불 시위가 일어났고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 출입구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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