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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연약한 나물이 지구의 미래?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채소를 사랑했다. 당대 최고 지식인이었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대표적이다.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의 취미는 채소밭을 가꾸는 것이었다. 다산은 밥상에 올릴 반찬 중 많은 것을 직접 재배해 먹었다. 심지어 이런 글도 남기기도 했다. ‘쓸데없는 책이나 지루하고 무용한 논의는 다만 종이와 먹만 허비할 뿐이고, 좋은 과일나무를 심고 좋은 채소를 가꾸어 생전의 살 도리나 넉넉하게 하는 것만 못하다.’

나물을 좋아한 게 다산뿐이었을까. 나물은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을 먹여 살린 먹거리였다. 천지간에 먹을 게 나물밖에 없을 때가 많았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민족은 ‘채소민족’이자 ‘나물민족’이었다.

‘나물민족이 이어온 삶 속의 채소, 역사 속의 채소’라는 부제가 붙었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우리네 식문화를 일별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나물이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면밀히 살피면서 다양한 채소들의 역사 효능 조리법을 다룬다.

여기에 채소에 관한 방대한 인문학적 자료가 포개진다. 고문서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채소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나물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채소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군데군데 흥미를 돋우는 스토리가 적지 않다. 가령 토마토는 이수광(1563∼1628)이 쓴 ‘지봉유설’(1614)에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토마토를 ‘남쪽 오랑캐가 전한 감’이라는 뜻의 ‘남만시’로 불렸다. ‘한국인의 채소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채소’는 양파다. 양파는 조선 말기에야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언젠가부터 한국인이 많이 먹는 채소 랭킹에서 배추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자는 나물이야 말로 ‘지구의 미래’라고 말한다. 연약하기 한량없는 나물에 지구촌의 앞날이 달렸다니 무슨 뜻일까. 그는 채식 위주의 식단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면서 환경 보호에도 일조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육류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채소의 24배에 달한다. 채식이 중심이 되는 밥상의 모습은? 바로 한식이다.

‘채식에 기반을 둔 나물문화는 지구 대안음식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먹거리체계를 위한 대안은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먹거리 방식에서 배워야 한다. …한국인의 독특한 채소 조리법을 담은 나물문화는 지구의 미래 대안음식으로서 가능성을 가진다.’

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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