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출판

[책과 길] 부러워하면 지는 거지만… 부럽다, 노르딕





저만치 앞서가는 나라들 이야기를 듣는 건 얼마간 씁쓸한 일이다. 특히 북유럽 국가라면 아예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다. 온갖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엄청난 복지제도만 들어도 기가 죽는다. 수많은 통계도 이들 국가의 우수성을 증명한다. 예컨대 2012년 UN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를 보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가 차례로 1∼3위에 랭크됐다. 적자생존의 개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처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은 누구나 아는 북유럽 국가들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은 신간이다. 저자는 핀란드 최대 일간지 ‘헬싱긴 사노마트’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미국 남자를 만나 2008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는 세계 최강국 미국과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를 통칭하는 ‘노르딕(Nordic)’ 나라들을 비교하면서 말한다. 노르딕 국가들은 이미 미래에 선착했다고.

그렇다고 북유럽의 대단한 사회복지 제도와 유복한 환경만 자랑하는 책이 또 출간됐다고 예단해선 안 된다. 가장 빛나는 대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많은 독자들은 북유럽 국가가 사회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라고 단정한다. 끈끈한 연대를 강조하고 가진 자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 생각은 다르다. 노르딕 국가에서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지고의 가치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육성하는 게 이들 사회의 목표다. 저자는 이를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이라고 명명한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가장 개인적인 사회로 여겨지는 미국으로 건너간 여성이 북유럽이야말로 개인주의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건 통념을 뒤집는 발언이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어져온 노르딕 사회의 원대한 야망은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자선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자녀를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를 성인 자녀로부터. …모든 인간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게 진실해지도록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 빚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을 상술하면 이런 예시를 들 수 있겠다. 노르딕 국가는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2세를 임신한 적 있는 저자의 핀란드 지인이나 스웨덴 친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간호사들이 자신을 잘 챙겨줘 서비스가 지나칠 정도였다” “(의료진은) 하늘이 보내준 분들 같았다”….

최고의 의료 혜택이 돌아가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동등한 자유를 누리고 같은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이 있어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공짜로 대학에 다니고 취업한 뒤에도 각종 혜택을 누린다.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지 않는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하니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다. 반려자를 결정할 때 경제력은 고려 요소가 아니다. 오로지 사랑이 결혼 여부를 결정짓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저자는 미국인 남자친구로부터 오팔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약혼반지를 받고서 난감했다고 한다. 핀란드에서는 금반지 하나씩 주고받는 게 관례였으니까. 그는 약혼반지를 거론하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맞이할 결혼 생활의 상징이 왜 돈이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보드라운 오팔과 다이아몬드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나는 반지의 제왕 속 골룸이 된 느낌을 맛보았다. 소중한 반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는 골룸 말이다. …금욕적이고 무뚝뚝한 노르딕 사람들이 지구에서 제일가는 진짜 로맨티스트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어떤 반박을 내놓을지 예상 가능하다. 노르딕 국가의 멋들어진 사회제도는 세금을 많이 내니 가능한 거라고 말할 것이다. 저자 역시 핀란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소득의 30%가 세금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세금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다르다.

‘내가 낸 세금은 복지에 의존해 사는 게으른 빈대들한테 나눠주는 돈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양질의 서비스에 쓰이는 돈으로, 일종의 거래였다.’

이 책은 미국과 노르딕 사회를 비교한 에세이다. 하지만 ‘미국’ 자리에 ‘한국’을 넣어도 무리 없이 읽힌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어쩔 수 없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저 멀리 미래에 도착해 있는 노르딕 나라 사람들을 상상하며 백기를 흔들게 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