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 스트리밍이냐 스크린이냐




“저녁 열 시, 파리의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계층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성당 중앙 홀에 모인 신자들처럼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스크린을 향해 모여 앉아 똑같은 고뇌와 똑같은 기쁨으로 하나가 된다.”

사르트르는 젊은 시절 영화에 대한 짧은 글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각별한 체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건 단순히 한 편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영관 불이 꺼진 후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할 때의 설렘, 어둠 속에서 연결된 타인들과의 희미한 유대감, 그리고 상영관에서 나올 때의 비현실적 감각까지. 이 모든 과정이 영화에 대한 체험을 구성한다.

잘 알려진 대로, 영화라는 매체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활동사진 기술을 발명한 사람은 에디슨이었다. 그가 선보인 ‘키네토스코프’라는 동영상 관람기계는 사운드까지도 재현할 수 있었다. 만화경처럼 눈을 대고 들여다보도록 설계된 1인용 장치로 꽤 인기를 누렸지만, 뤼미에르 형제의 영사 장치가 등장하자 곧 외면당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 영사되는 이미지를 함께 체험하기를 더 원했기 때문이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인터넷 기반 스트리밍 방식의 동영상 서비스로 유명한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190개국에서 넷플릭스 가입자에게만 공개되며 한국에서만 예외적으로 극장에서도 동시 개봉된다. 오랜 전통과 권위를 지닌 칸영화제에 극장 개봉이 불가능한 영화가 초청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극장주들은 내내 불만을 쏟아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도 “영화는 극장 스크린을 통해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개인적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달 28일로 국내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옥자’는 주요 극장체인들이 꺼리고 있어 아직 상영관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DVD 대여와 온라인 서비스를 위주로 하던 넷플릭스라는 작은 기업이 ‘하우스 오브 카드’ 등 뛰어난 드라마들을 자체 제작하며 급성장하더니 대규모 상업영화의 제작과 유통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현실은 극장주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법적 규제가 없어 소수 대기업들이 극장체인까지 운영하면서 제작부터 배급, 상영까지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시장을 독점해오다 보니 독립영화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 등 많은 문제가 누적되어 온 상태다. 넷플릭스가 이러한 독점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좋은 경쟁자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거대 포식자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극장은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늘 생존을 위협받아 왔다. 그러나 그 위기들은 역설적으로 영화에게 새로운 발전으로 향하도록 길을 열어주곤 했다. 1940년대부터 텔레비전이 가정에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게 되자 영화는 와이드스크린과 컬러 기술로 돌파구를 열었고, 90년대부터 DVD와 불법 복제 등에 의한 가속화된 위기는 3D 기술의 진화로 뛰어넘었다. 간편하고 저렴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새로이 맞게 된 위기일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 극장들도 독점적 운영구조에서 벗어나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영화를 더 이상 스크린으로 볼 수 없는 시대는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금미<영화 칼럼니스트·영화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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