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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고추는 왜 매울까… 日학자의 50년 고추 추적기



첫머리에 등장하는 건 셰프 정동현의 추천사다. ‘매운맛으로 점철된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 입에 침이 돌았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손끝에 매운맛이 밴 것 같았다. 진짜냐고? 읽어보면 안다. 나는 이제 손을 씻을 것이다. 그 옛날 혀를 씻어냈듯이.’

그가 이런 추천의 글을 쓴 이유는 추천사 내용처럼 ‘읽어보면 안다’. 이 책은 매운맛의 아이콘인 고추의 세계를 심도 있게 파헤친 신간이다. 지은이는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명예교수인 야마모토 노리오(74). 그는 교토대 농학부에 재학 중이던 1968년 안데스산맥 일대 사람들이 재배하는 식물들을 연구하러 볼리비아에 갔다. 당시 그는 한 시장에서 야생고추 ‘울루피카’를 먹었는데,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맵디매운 맛에 식겁을 했다. 남들 같으면 그냥 넘겼을 이색 체험이었을 터인데, 저자는 달랐다. 왜 사람들은 매운 맛에 끌릴까, 인류가 고추를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고 50년 가까이 이 문제에 천착했다.

책에 따르면 인류가 고추를 처음 재배한 시기는 기원전 8000∼7000년쯤으로 추정된다. 원산지는 중남미 일대. 하지만 고추가 세계인의 식탁에 두루 오르기 시작한 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5세기 말부터였다. 유럽으로 건너온 고추의 매운맛은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책은 중남미에서 출발해 지구를 오른쪽으로 돌며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의 ‘고추 문화’를 살피는 구성을 띠고 있다. 고추가 전파된 이른바 ‘페퍼 로드(Pepper Road)’를 따라간 셈이다. 저자는 고추가 이들 지역의 식탁에서 어떤 입지를 구축했는지 살피면서 왜 고추는 매운 건지, 야생종과 재배종의 차이는 무엇인지 들려준다.

고추를 다룬 방대한 내용이 이어지지만 독자의 관심은 말미에 등장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고추 문화를 다룬 챕터에 쏠릴 듯하다. 특히 김치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고추 사랑은 유별난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선지 저자는 한국 챕터 제목을 아예 ‘고추의 혁명’이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고추를 이용한 빨간색 음식을 즐기는 걸가. 저자는 고추가 향신료로서 한국인의 육식문화에 맞아떨어졌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빨간색이 질병을 쫓는다고 여긴 미신 탓일 수도 있다는 거다. 옛날 어르신들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붉은 팥으로 밥을 지은 걸 떠올리면 아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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