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판 깨자는 트럼프… 흔들리는 ‘파리기후협정’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공동 성명이라며 내놓은 건 6쪽에 그쳤고 참석자들의 얼굴엔 불쾌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27일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회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파리기후협정’이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정상들은 파리협정 준수를 위해 이틀 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협박도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빈약한 G7 공동성명에는 “미국을 제외한 6개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협정 이행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미국의 (파리협정) 검토 절차를 이해한다”는 문구를 넣는 데 그쳤다. 도대체 파리협정이 무엇이기에 전 세계 정상들이 신경전을 벌인 것일까.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 노력의 역사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공조하기 시작한 건 1992년 유엔 기후협약이다. 이후 교토의정서, 파리협정으로 이어졌다.

1997년 12월 채택해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1차 공약기간(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대 대비 5.2% 감축하는 게 목표였다. 실제 그 기간 평균 22.6% 감축 효과를 봤다. 아쉬운 건 미국과 중국 등 온실가스 배출 1, 2위인 주요 국가들의 불참이었다.

2011년 더반에서 열린 기후변화 협상에서는 1차 공약 기간을 2015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때까지 2020년 이후 적용될 새로운 체제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15차례에 걸쳐 협상이 진행됐고 2015년 12월 12일 파리 인근 르부르제 전시장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본회의에서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195개 당사국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2도보다 훨씬 작게 제한하며 1.5도까지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파리협정과 교토의정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각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규모를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다. 또 당사국인 ‘모든 국가’가 의무적으로 감축을 해야 한다. 이들 국가가 세계온실가스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에선 선진국만 감축 의무가 있었다.

자율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할 수 있는 대신 5년마다 상향된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각 국가가 스스로의 목표(NDC)를 정하는 상향식 방식에 따라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37%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할 경우 196개국이 어렵게 합의를 도출해 만든 협약은 무너질 수 있다.

판 깨자는 트럼프 속내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 탈퇴를 주장하는 데는 자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에 따른 에너지 독립국이라는 목표가 숨어 있다.

미국 내 에너지 생산을 최대화해 적대적인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 연료 가격을 낮춰 1인당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이면 경기 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메탄가스가 들어 있는 ‘셰일오일 및 셰일가스’ 증산이 필수적이었다. 타깃은 파리협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민주당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비판했다. 민주당이 2035년까지 국가 전력의 80%를 청정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면 공화당은 석유 등 전통적 에너지 자원 개발을 확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웨스트버지니아 등 석탄산업이 중요한 지역은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했다.

당선 후 백악관은 “건강한 에너지 정책은 50조 달러 상당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내 자원을 재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를 적극적으로 시추해 수백만 국민에게 일자리와 번영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더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파리협정 참여를 위해 세워놓은 법적 토대가 불안하다는 점 역시 트럼프 행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파리협정이 의회 인준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따라서 의회 비준이 필요한 ‘조약’ 대신 ‘행정명령’ 형태로 협약에 가입하고 이행하기로 했다. 청정대기법에서 탄소를 오염물질로 정하고 미국 각 주에 전력 생산을 할 때 탄소 배출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석탄발전을 획기적으로 줄이라고 명령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여러 주에선 이 같은 행정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도 언제든 행정명령을 무효화할 수도 있다.

미국이 탈퇴하면 석유값 오를까

트럼프 대통령은 폐막 직전 트위터에 “파리기후협정 잔류 여부를 다음 주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게 되면 협정 자체의 실효성은 크게 퇴색할 것으로 보인다. 자금 확보에도 비상등이 켜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개발도상국의 온난화 대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내기로 했던 갹출금을 삭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100억 달러 규모로 조성키로 한 ‘녹색기후기금’에 회원국 중 가장 많은 30억 달러를 내기로 돼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산업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석탄이나 석유 등 전통 에너지원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31일 “석탄과 석유 사용을 다시 늘리는 시그널로 시장에서 인식할 것”이라며 “결국 실수요에 가수요까지 붙어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탈퇴로 기후변화 대응체제는 늦어질 수 있지만 결국은 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흔들리지 말고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현재 정부와 기업은 파리협정 발효를 앞두고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다양한 계획을 마련했다. 석유와 석탄을 대신할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발전사업자들의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자동차가 온실가스의 약 25%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전기차산업 육성에도 나섰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그리드, 스마트타운 등도 추진 중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길환 연구위원은 ‘파리협정 채택과 우리나라의 대응 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대응 방향을 제안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에너지 신산업,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의 정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선진국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의 측정·보고·검증(MRV) 체제를 개도국에 전수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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