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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한국인은 왜 시험에 집착하나?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른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취직하려면 시험은 피할 수 없다. 고려 초기 과거제도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험은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됐다. ‘재수는 필수’라는 말이 생겨나고, ‘고시낭인’이 사회문제화 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험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신분 상승의 합법적 사다리라는 긍정의 목소리가 있는 반면 사람의 능력을 기억력이나 시험치는 기술로 평가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적격자를 선발하는 가장 공정한 수단이 시험이라는 명제를 부정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험국민의 탄생’은 한국인은 왜 시험에 집착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시험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사회와 조직 구성원을 어떻게 서열화시키고, 그 속에서 시험치는 기계로 전락하는 개개인의 자화상을 파헤친다. 이 책은 시험만능주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시험의 과잉’에 시달리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로 인한 폐해 또한 심각하다. 시험공부가 학교교육을 대체했고, 사회엘리트의 대명사로 굳은 고시출신의 특권을 당연시해왔다. 시험 한번 잘 보면 평생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례가 보여주듯 이것을 과연 정의롭다 할 수 있을까. 시험만능주의의 폐해다.

대학수능시험 성적은 평생의 멍에로 따라다닌다. 수능점수는 학벌과 교환되고, 학벌은 취직과 임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2011년을 기준으로 고졸 임금이 100이라면 전문대졸은 116, 대졸은 164에 이른다. 그러니 너도나도 수능에 모든 걸 건다. 독일에 “고졸은 포르셰를 타고, 대졸은 폴크스바겐을 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학벌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저자는 “시험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일을 하든 사회적 격차를 낮추면 시험에 목매지 않는 훨씬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한다. 대학진학을 못하면 살기 어려운 현실의 반영이다. 저자의 주장은 절규에 가깝다. “노동자와 농민을 천시하고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면 가차 없이 탄압했던 역사가 없었더라면, 모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인정받는 사회였다면 이토록 대학으로 몰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로 가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학벌이고, 다른 하나가 고시다. 일류 학벌에 고시까지 합격하면 국가권력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른바 ‘시험엘리트’들이다. 2014년 3월 현재 국정원을 제외한 정부 부처 1급 이상 공무원 256명 가운데 무려 191명(74.6%)가 고시 출신이다.

다수 국민들은 시험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독점하는 것은 능력에 따른 정당한 분배이고, 그것이 공정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시험이 시험 자체의 공정성을 담보하기도 쉽지 않고 시험이 사회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시험점수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이에 따라 모든 걸 부여하는 방식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이들일수록 성과주의를 내세우면서 정작 본인들은 평가 무풍지대에서 권력을 즐긴다”고 갑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시험이 없는 사회를 꿈꾸어 보자. 시험 없이도 모두가 스스로 성찰하고 함께 제안하고 토론하며 혁신하는 사회를 얘기해 보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두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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