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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배우의 삶 때론 두려워, 그럼에도 계속” [인터뷰]




배우 이정재(44)는 오랜만에 떨림을 느꼈다. 고생 끝에 완성한 영화 ‘대립군’을 언론에 처음 선보이는 시사회 자리에서였다. 긴장감에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저 원래 그렇게 긴장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근데 오늘까지도 여파가 있네요. 계속 땀이 나고….” 아마도 그건 여전한 설렘과 열정의 증거였을 테다.

‘관상’(2013)의 수양대군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정재가 4년 만에 사극으로 돌아왔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대립군’에서 조선시대 대립군(代立軍)의 수장 토우 역을 맡았다. 대립군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받고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군인들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쟁의 소용돌이를 억세게 견딘 민초들이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명나라로 피란한 임금 선조를 대신해 임시조정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세자 광해(여진구)가 대립군의 도움으로 일본군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모든 것이 미숙하고 어리기만 했던 광해는 토우를 만나 단단히 성장해나간다.

‘진정한 군주는 백성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현 시대와도 맞닿아 있다.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3년 전 기획된 시나리오라서 시국이나 대선을 겨냥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은유적으로 잘 묘사돼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보기에 ‘국민이 왕을 만든다’ ‘국민의 힘이 곧 정의다’ 이런 얘기들이 그리 새롭지 않으실 수 있어요. 장미대선도 치러진 상황에 더는 신선한 주제가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부정할 수 없는 명제잖아요. 뉴스로 듣는 것과 영화로 보는 건 느낌이 또 다를 테고요.”

이정재는 극 중 토우가 광해에게 던진 이 외침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꼽았다. ‘두려워도 견뎌내야 합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25년째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꽤나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저도 두려운 적 많거든요. 종종 슬럼프도 있었고요. 흥행이 안 되거나 연기적으로 안 풀릴 때는 ‘왜 내 생각대로 안 될까’ 싶기도 했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겨내 보자’는 의지 같은 게 올라오더라고요.”

1993년 SBS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모래시계’(SBS·1995), 영화 ‘태양은 없다’(1999) ‘시월애’(2000) 등을 거치며 청춘스타로 군림했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던 그의 배우인생에 제2막을 열어준 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2012)이었다. 이후 ‘신세계’(2013) ‘암살’(2015) ‘인천상륙작전’(2016) 등 쉴 틈 없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재는 “매 작품마다 더 새롭고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연기자로서 제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며 “다른 캐릭터에 도전하는 건 이 직업이 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고 얘기했다.

“한 해 제작되는 한국영화 편수가 크게 늘어난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의 질이) 상향평준화됐거든요. ‘일을 쉬지 않고 해야겠다’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끊김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에 대한 욕심도 자꾸 커지고요.”

어느덧 40대 중반. 이제 결혼 생각도 별로 없다는 그는 “나이 드는 게 연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뭘 알아야 좀 더 정확한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륜에서 오는 깊이감은 부정할 수가 없거든요. 저도 나이가 더 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철이 없어서(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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