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5편>] 한국교회 부흥 동력 ‘특새’로 세계교회 새벽을 깨우다

서울 명성교회가 2010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특별새벽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1907년 성령부흥운동과 새벽기도의 출발지인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에 참석한 성도들 모습. 1902년 창립된 강화서도중앙교회 성도들이 2008년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위에서부터 시계방향). 명성교회 제공, 국민일보DB
 
서울 경동교회 성도들이 2007년 부활절 여명예배에서 찬양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김성영 목사


한국교회 부흥의 기폭제가 된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성령운동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 사이에 일어났다. 이는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처럼 ‘어둠과 절망’의 이 땅에 교회를 통해 ‘빛과 희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종교개혁 역사상 가장 큰 부흥을 이룬 한국교회의 뿌리에는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새벽기도운동이 있다. 평양에서 시작된 새벽기도는 전국으로 번져 한국교회 부흥의 동력이 됐으며 세계교회의 새벽을 깨우고 있다.

절망과 어둠 속에서 빛을 주신 하나님

지난 3월 1일부터 5일까지 이어진 명성교회의 특별새벽집회(특새)는 연인원 20만 성도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백 명의 목회자들 그리고 러시아 헝가리 중국 필리핀 등 해외 8개국에서 찾아온 교회 지도자들로 열기가 넘쳤다. 명성교회는 1980년 7월 개척 이래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특새를 한 번도 쉬지 않고 74회째 이어오고 있다. 이는 “기도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국가와 민족을 살린다”는 김삼환 목사의 ‘무릎목회’ 철학에 의한 것이다.

특새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해외에도 소개되고 있다. 6·25 전쟁 직후 두메산골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알리기 위해 매일 사발시계를 가슴에 품고 새우잠을 자던 한 소년이 울린 종소리가 60년을 이어 세속화시대의 새벽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교회사 연구가들은 1907년 평양 대부흥기에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와 박치록 장로가 새벽 4시쯤 교회에 모여 기도를 드린 사실에서 그 출발점을 찾고 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시작한 새벽기도는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알려져 머잖아 예배당을 가득 메우게 됐다.

당시 가난한 성도들은 물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온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날(日)을 정해 교회봉사를 했는데, 이 ‘날연보(a day offering)’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가 바로 장대현교회 새벽기도운동이 시작된 때라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말하자면 우리 선조들의 새벽기도는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와 같은 것이었다. 장대현교회의 새벽기도는 인근 교회로 확산됐고 1909년 백만인구령운동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볼 때 한국교회 대부흥의 토양에는 새벽기도가 자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새벽기도는 주권을 잃은 암울했던 시기에 민족을 각성시키는 영적 에너지로도 작용했다.

그뿐 아니라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대부분의 국토가 유린당하고 부산지역만 남은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도 온 교회가 밤을 지새우며 새벽을 밝혀 기도했다. 이후 전세는 극적으로 역전됐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교회는 새벽기도운동으로 다시금 일어섰으며 민족에게 구원과 소망의 빛을 던져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했다.

인류 구원을 위해 새벽을 밝히신 예수님

한국교회 하면 새벽기도회를 연상할 만큼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지상의 다른 어떤 민족보다 새벽을 깨우는 근면한 영성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새벽기도는 한국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경은 새벽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시 46:1∼5) 새벽기도의 창시자가 예수님이심을(막 1:35)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해 새벽에 역사하셨다(출 14:24∼27).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새벽 미명에 홀로 깨어 기도하셨으며 새벽에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운동은 교회당과 다락방에서, 카타콤과 골방, 지하암굴과 수도원에서 계속됐다.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한 종교개혁자들의 철야기도로 이어져 마침내 한반도 교회의 새벽을 열었다. 심지어 북녘 땅에서도 성도들의 목숨 건 새벽기도는 계속되고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새벽 제단을 쌓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산 제사’로서의 사명이다.

필자가 오래 전 세계교회사에 유서 깊은 수도원 영성의 현장을 순례하던 중 독일 뷔르템베르크 주의 마울부론 수도원에서 발견한 새벽기도 현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종교개혁기에 개신교를 받아들인 마울부론 수도원에는 당시 수도사들이 사용하던 기도실이 보존돼 있는데, 수도사들이 온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치열하게 기도했던지 마룻바닥이 움푹 파인 흔적이 역력했다. 당시 수도사들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됐다고 한다.

필자가 2004년 그리스정교회의 상징인 아토스산의 수도원을 답사했을 때 그곳 수도사들의 새벽기도회도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매일 새벽 4∼5시간씩 기도를 하는데, 어떤 날은 새벽기도가 12시간이나 계속돼 저녁기도로 이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아토스산의 기도 용사들은 매일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데, 특히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열심히 중보하고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한국교회 새벽기도 다시 불붙여야

광복과 함께 북한의 교회가 폐쇄되자 성령의 불이 평양에서 서울로 옮겨왔다. 한국교회 부흥의 무대가 북녘에서 남녘으로 바뀐 것이다.

장대현교회의 새벽기도는 1945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성도들로 세워진 영락교회의 새벽기도로 이어졌다. 1960년대에는 서울 대조동 깨밭에서 천막을 치고 가난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새벽기도로, 1980년대에는 서울의 변두리였던 명일동 버스 종점에서 시작된 명성교회 새벽기도로 이어졌다.

명성교회는 개척 초기부터 뜨거운 새벽기도와 계절별 특새로 개척 37년 만에 12만 성도가 모이는 세계 최대 장로교회로 성장했다. 서울 사랑의교회와 부산 수영로교회, 인천 주안장로교회와 전주 바울교회, 김포 안디옥성결교회 등의 새벽기도도 뜨겁다. 새벽기도는 전국 대부분 교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교회와 기도원, 가정과 일터에서 이름 없이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다. 급진적인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초래한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 현대인의 심성은 날로 파괴되고 크리스천의 영성마저 위협 받고 있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더욱 경성해 기도해야 하겠다.

통과의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서는 안 된다. 올해를 한국교회의 새로운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온 새벽기도에 더욱 힘써야 한다. 이 땅의 종들은 밤을 밝히고 새벽을 깨우신 예수님의 겟세마네로 나아가야 한다. 길선주 목사처럼 새벽 제단을 통회자복의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한국교회가 새벽빛으로 다시 일어나 민족을 구원하고 국가를 변화시켜야 한다.

글=김성영 목사 (전 성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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