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대한민국 4.0, 가치사회로 가는 길




모세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제 민족을 새 땅으로 이끌어 낸 그의 사연은 구약성서를 대표하는 전승(傳承) 중 하나다.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에서 모세는 일제 강점기 이래 독립을 갈망하는 성공스토리로 각인돼 있다.

그런데 모세의 마지막은 애잔하다. 그는 멀리 건너편 산 위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만 봤을 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심지어 그가 묻힌 곳조차 알려지지 않았다(신명기 34:1∼6). 이는 모세를 기념하기보다 그와 더불어 펼쳐진 출애굽의 참 의미를 기리라는 뜻으로 읽힌다. 종종 우리는 가치나 본질을 중시하기보다 관련 인물과 현상에만 매달리는 우를 범한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자 곳곳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넘친다. 국민 친화적이며 소탈한 대통령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에 감격한다. 하지만 겉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정부의 탄생 배경을 기억하는 일이다. 시대적 사명을 바로 읽자는 얘기다.

‘이게 나라냐’며 외쳐온 광장의 촛불이 바라는 세상, 그 자리에 함께한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 4.0’을 향한 국민적 각성이다. 우리는 모세의 출애굽 과정보다 더한 난관을 숱하게 넘어왔고, 이제 네 번째 변곡점에 섰다.

‘대한민국 1.0’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열렸고 그것은 남북으로 갈라진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2.0’은 60년대 들어 시작된 압축성장의 산업화다. 이어지는 ‘대한민국 3.0’은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오랫동안 유보됐었던 민주화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압축성장의 폐해는 심각했다. 몸과 정신의 괴리가 컸고, 그로써 가치 실종의 사회가 확산된 점이 문제였다. 분열과 차별은 당연시되고 배려와 공감은 사라졌다. 형식·학벌주의, 외모지상주의, 금전과 권세 지향주의 탓에 사회의 공공성은 크게 훼손됐다. 여기에 사대주의까지 끼어들어 일부 엘리트 중심의 그들만의 세계가 뿌리내렸다.

그 와중에 새 정부 탄생과 함께 가치사회로 가는 길, ‘대한민국 4.0’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광장의 촛불에 담긴 숱한 주장의 공통항은 ‘사람답게’ ‘자존감’이었다. 인간 가치의 회복을 요구한 것이다. 청년실업, 노인빈곤, 남녀·세대·지역·문화·이념갈등 등도 심각한데 이것들의 원인도 ‘훼손된 자존감’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풍요로워지기보다 먼저 가치 있는 존재로 대우받기를 원했다. 예컨대 “노인은 꿈을 꾸고 젊은이는 비전을 볼 것”(요엘 3:28)이라는 구약성서의 예언은 경제적으로 넉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과 젊은이가 기댈 수 있는 나라, 인생의 경륜자로서 노인의 꿈이 존중되고 새 세계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이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품어주는 사회를 뜻한다고 본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감을 느끼고 싶다’ ‘자랑스러운 나라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대한민국 4.0’을 펼쳐갈 힘이다. 권력구조 및 선거제도 개편 등을 포함한 개헌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 본질과 기준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 구현에 있다.

변덕 심한 북한과 주변 강대국의 압박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우리 자신들로부터 나온다. 애타게 기다리는 통일도 남북이 서로의 자존감을 존중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가치사회의 실현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로 다가왔다.

문재인정부는 ‘대한민국 4.0’의 길라잡이가 돼야 한다.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죽음으로써 오직 인도자 역할에만 충실했던 모세처럼.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겠으나 핵심은 명쾌하다. 공공성 회복과 가치사회의 절실함만 공유해도 모든 가능성은 열릴 터이니.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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