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복수는 나의 것





“애비는 종이었다.” 서정주는 그의 시 ‘자화상’에서 이렇게 썼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에서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오랜 세월이 흘러 서정주의 고백을 이렇게 반복한다. “아버지도 씨종의 자식이었다.” 천년을 두고 대물림된 노예의 삶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얀 펜(Jan Pen)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인 소득의 불평등을 난쟁이와 거인의 비유로 설명한 바 있다. 난쟁이는 자본주의 시대의 노예다. 조세희는 ‘난쏘공’에서 정당한 몫을 빼앗긴 채 영원히 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 하층민의 절망적인 삶을 ‘난장이’라는 신체적 불구로 상징화한다. 실제로 영수의 “아버지의 키는 백십칠 센티미터, 몸무게는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 영수는 다시 말한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난쏘공’은 1970년대 산업화시대에 종에서 가난한 철거민으로, 노동자로 모습을 바꾼 노예의 삶을 대물림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난과 비참은 상속된다. 철거될 집을 되찾기 위해 ‘딱지’(아파트 입주권)를 사서 되파는 사내에게 몸을 맡기는 영수의 동생 영희는 부자인 그를 보며 생각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영수와 영희의 엄마도 말한다. “너희들은 엄마를 잘못 두어 이 고생이다.” 빈부는 그렇게 이미 날 때부터 결정돼 있다. 물려받은 빈부의 거리와 격차는 아무리 싸우고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 ‘난쏘공’의 이 절망적인 인식은 오늘 날 ‘흙수저’와 ‘금수저’의 거리로 상징되는 저 ‘수저계급론’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있었다. 마침 ‘난쏘공’에도 수저가 등장한다. 그것은 녹이 슨 ‘놋수저’다. 영수는 꿈을 꾼다.

푸른 녹이 낀 놋수저를 아버지는 끌고 갔다. 머리 위에서는 해가 불볕을 내렸다. 아버지에게 그 놋수저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불볕 속에서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지친 아버지는 키보다 큰 수저를 놓고 쉬었다. 쉬다가 그 수저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버지는 불볕을 받아 뜨거워진 놋수저 안에 누워 잠을 잤다. 나는 수저 끝을 들어 아버지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버지의 몸을 놋수저 안에서 오므라들었다. 나는 울면서 아버지의 놋수저를 잡아 흔들었다.

밥을 먹는 도구인 수저는 생계의 상징이다. 아버지는 자기 몸보다 더 큰 수저에 짓눌려 끝내 수저 안에서 오므라들어 죽는다. 수저가 아버지를 삼켜버린다. 살던 집이 철거된 후 실제로 난쟁이는 벽돌 공장 굴뚝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딸들은 은강그룹 계열사의 노동자로 일하며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생존마저 위협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영수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노동조합을 조직해 싸우지만 사측의 탄압으로 그마저 가로막히자 그룹 회장의 동생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난쏘공’은 산업화시대 자본의 폭력에 짓눌린 난쟁이 가족의 절망적인 싸움과 패배와 죽음의 기록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에 동조하는 반성적인 중간층, 그룹 회장 가족까지를 아우른 다양한 시선이 모자이크처럼 결합해 난쟁이 가족의 비극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난쏘공’은 1976년 단편 ‘칼날’을 시작으로 차례로 발표된 12편의 단편을 모아 1978년 연작소설집의 형태로 묶여 나왔다. 1970년대 중후반은 박정희정권의 개발독재로 인해 축적된 사회의 모순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저임금 저곡가 정책에 기반한 수출주도형 산업화는 농촌의 해체와 도시 빈민의 양산, 노동 조건의 악화를 불러왔고 빈부격차는 더욱더 벌어졌다. 특히 강압적인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자본의 횡포는 노동자에게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과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을 강요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일련의 노동자 수기는 생생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그 비인간적인 노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노동자 의식의 각성을 그리기 시작했다.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1976)과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1977)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문학이 당대의 노동 현실을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을 때 이 노동자 수기들은 지식인 문학을 대신해 증언과 고발의 임무를 떠맡은 또 다른 문학의 목소리였다. 이즈음에 발표된 조세희의 ‘난쏘공’은 그 현장의 목소리에 대한 지식인 작가의 응답이다. 작가는 ‘난쏘공’이 “내가 너무 아파서 지른 간절하고 피맺힌 절규”였다고 말한다. ‘난쏘공’은 1970년대 공장 노동자가 처한 고통스런 노동 현실의 비참과 싸움에 대한 공감을 본격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담아낸 최초의 지식인 소설이었다.

‘난쏘공’의 세계는 이분법적 대립의 세계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자본가와 노동자, 천국과 지옥, 정의와 불의 등의 선명한 대립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더욱 극적으로 부각하기 위한 작가의 전략이다.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봐.” 이렇게 작가는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난쟁이 가족의 싸움까지도 선명한 선과 악의 싸움으로 축약한다. 더불어 소설의 앞뒤에 배치된 뫼비우스 띠의 비유와 굴뚝청소부의 우화, 그리고 미지의 혹성으로 우주여행을 떠나기로 한 교사의 이야기가 가세해 이 소설을 하나의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잔혹동화로 읽히게 한다. 하층민과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과 극명히 대비되는 시적인 문체, 환상과 현실을 수시로 뒤섞고 교차시키는 서술기법은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작가 조세희는 이를 통해 결국 무엇을 겨냥하는 것인가? 작가는 말한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증오에 대해서 썼어요. 물론 그 증오는 사랑의 결핍이 낳은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불행한 세계가 나의 공격 목표였어요.” 난쟁이 가족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런 세계다. 영수에 따르면 그 세계는 지옥이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지옥에 만연한 증오, 그리고 그에 대한 절망과 분노. 그들은 이미 ‘헬조선’을 앞질러 살고 있었다.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 달나라로 가고자 했던 ‘난쏘공’의 난쟁이는 그곳을 사랑이 충만한 유토피아로 묘사한다. 그것은 지옥에서 꾸는 꿈이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모든 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곳, 사랑의 율법이 지배하는 곳. 그곳이 ‘난쏘공’의 조세희가 그렸던 유토피아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은강그룹 회장을 죽이려다 그의 동생을 살해하는 영수의 선택은 정상적인 방법으론 그 꿈에 한 치도 다가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의 표현이다. 영수의 테러리즘은 희망 없는 세상에 대한 절망적인 복수다. 그리고 여동생 영희는 그 이전에 이미 그에게 가차없는 복수의 테러를 주문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 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난쏘공’의 이 사적 복수는 흔히 조직적 집단적 투쟁의 전망이 결여된 노동자의식의 한계(또는 작가의식의 한계)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렇게 치부하고 마는 것은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지루하다. 좀 더 멀리 나가보자. ‘난쏘공’에서 영수는 눈에 보이는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라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반문한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영수의 테러는 그 폭력의 질서를 겨냥한 복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차라리 그의 복수를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는, 그들이 지배하는 폭력적인 법의 세계를 파괴하는, 사랑의 율법의 폭력으로 과격하게 해석하고 싶어진다.

오랜 세월이 흘러 박민규의 소설 ‘핑퐁’(2006)에서 폭력에 시달리던 두 왕따 중학생 ‘못’과 ‘모아이’는 가망 없는 폭력적인 세계를 통째로 ‘언인스톨’한다. 독일 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자기를 정당화하는 폭력의 법을 근원에서 폐기하는 폭력을 ‘신적 폭력’이라고 불렀다. 박민규의 ‘언인스톨’은 그 신적 폭력의 상상이다. 조세희가 그린 영수의 테러는 이 ‘언인스톨’의 소박한 1970년대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2017년 4월, ‘난쏘공’이 300쇄를 찍었다. ‘난쏘공’의 이 끈질기고 오랜 생명력은 어쩌면 난쟁이 가족의 불행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형형임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난쏘공’은 더 오래 살아남아 읽히며 우리의 오지 않는 미래를 환기할지도 모른다.

■ 조세희는
철거촌, 노동현장, 사북사태, 광주항쟁… 한국사회 현실을 직시한 작가


1942년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돛대 없는 장선’으로 등단했다.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조세희는 등단 이후 10년 동안 작품을 못 쓰다가 1975년 ‘문학사상’에 ‘난쏘공’ 연작 중 첫 소설인 ‘칼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조세희는 그렇게 1978년까지 틈틈이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 연작소설집 ‘난쏘공’을 출간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이듬해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실제 산동네 철거촌이었던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동대문구 면목동, 구로구 가리봉동, 인천 동구 만석동 일대를 다니며 취재했다. 그러던 중 철거촌에서 어느 가족의 마지막 식사를 침범한 포크레인을 본 뒤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조세희는 과작(寡作)의 작가다. 그는 ‘난쏘공’ 이후 침묵하다가 1983년 단편소설집 ‘시간여행’을, 1985년 사진집 ‘침묵의 뿌리’를 출간한다. 특히 사북사태 이후의 사북의 현실을 담아낸 사진집 ‘침묵의 뿌리’는 그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한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1991년 광주민주화 항쟁을 다룬 장편소설 ‘하얀 저고리’ 연재를 시작했지만 아직 완결짓지 못했다.

<문학평론가 김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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