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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집요하지 않은 연기 창피해… 늘 채찍질” [인터뷰]





연기력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 설경구(50)를 빼놓고 한국영화계를 논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작품에서든 그의 존재감은 강렬했고, 그의 선택은 곧 정답이었다. 한데 언제부터였을까. 설경구에게도 피할 수 없는 슬럼프가 찾아왔다.

최근 몇 년간 흥행 부진이 이어졌다. ‘소원’(2013) ‘나의 독재자’(2014) ‘서부전선’(2015) 등이 줄줄이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자연스레 배우로서의 위기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월 개봉한 ‘루시드 드림’을 찍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연기하다간 끝나겠구나.’

오는 17일 개봉하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선보이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유난히 맘껏 즐기며 촬영한 작품인데다 결과물까지 만족스럽게 나왔다. 앞서 열린 시사회 이후 각종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설경구 연기에 대해서도 “과거의 폭발력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설경구는 이런 여론에 짐짓 쑥스러워했다. 다시 전성기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칭찬에 그는 “전성기까지는 안 바란다”며 웃었다. “주변에서 ‘신선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것만으로) 감사하죠.”

‘불한당’은 언더커버(신분을 숨기고 수행하는 비밀작전)를 소재로 한 범죄액션물이다. 표면적인 설정만으로는 그리 새로울 게 없다.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며 교도소 안에서 왕 노릇을 하던 재호(설경구)가 잠입수사를 위해 위장 수감된 신참 경찰 현수(임시완)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본 뒤 제 첫 질문은 ‘이걸 왜 찍으려고 하느냐’였어요. 흔해 보였거든요. ‘굳이 이런 영화를 또?’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변성현 감독은 ‘별다르게 찍겠다’고 자신하더라고요. 변성현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어요. 꾸밈없는 언변에서 작품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죠. 믿음이 갔어요.”

설경구는 “변 감독 등 핵심 스태프들이 전반적으로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궁합이 잘 맞았다”면서 “그들의 치열함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젊은 친구들한테 자극받긴 또 처음이에요. 영화밖에 모르는 꼴통들 같더라고요(웃음). 촬영하면서도 몇 번씩 엄지를 치켜들었어요.”

‘불한당’은 제70회 칸영화제 초청작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영화는 오는 24일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상영된다. 설경구도 임시완 김희원 등과 함께 현지를 방문할 예정이다.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2002) ‘여행자’(2009)로 칸의 부름을 받은 그이지만 영화제에 직접 참석하는 건 ‘박하사탕’ 이후 17년 만이다.

“임시완에게 칸 초청 소감을 물으면 ‘잘 모르겠다. 얼떨떨하다’고 하잖아요. ‘박하사탕’ 때 제가 그랬어요. 멋모르고 갔죠. 기억도 잘 안 나요. 그냥 이창동 감독님 뒤만 졸졸 쫓아다닌 기억밖에 없어요. 다시 가게 되니까 확실히 좋더라고요(웃음).”

설경구는 “그동안 내가 많이 침체돼 있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다시 고민하며 연기해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매너리즘은 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고 했다.

“제게서 집요하지 않은 지점이 보이면 불편하고 창피하더라고요. 저는 탄력을 받아 쭉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해요.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해져요. 물론 피곤하죠. 근데 편한 꼴을 못 봐요. 편해지면, 창피하니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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