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5편>] 가장 큰 부흥을 주신 은혜에 선교와 봉사로 세상 밝혀

1960년대 서울 대조동 천막교회 당시 전경.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현재의 여의도순복음교회 모습.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조용기 원로목사와 이영훈 담임목사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94년 케냐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성령화 대성회 모습으로 당시 아프리카 최초로 연인원 100만명이 참석해 복음을 들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김성영 목사


한국교회의 부흥은 종교개혁 500년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급성장을 이룬 대표적 사례이다. 1990년대 초 타임지를 비롯한 각국 언론들은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으며, 미국의 종교전문지 ‘크리스천 월드’는 세계 50대 교회 중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가장 큰 교세의 단일교회로 평가했다. 93년 이 교회는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양적 성장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대형교회의 문제점도 있으나 정체 상태에 처한 한국교회는 내적 성숙과 외적 성장을 함께 추구하며 계속 부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오순절적인 대부흥을 이룬 교회답게 세계선교와 사회봉사에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

성령의 은사와 ‘희망 목회’ 60년

95년 9월 6일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와 ‘희망의 목회자’ 조용기 목사가 만났다. 두 사람은 ‘희망은 인간을 생명으로 이끈다’를 주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죄로 인한 절망과 죽음’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한 희망과 생명’에 대한 이들의 대화는 19세기 기독교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진술한 성경 진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동일하게 강조하는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희망이다. 즉 고통의 현실 너머 궁극적인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희망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십자가 중심의 ‘희망 신학’이자 ‘희망 목회’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교회로 성장시킨 조 목사의 목회철학을 ‘희망 목회’이자 실천적 ‘성령신학’으로 평가했으며 후에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 그리스도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절망의 포로수용소에서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를 통한 희망을 체험한 몰트만은 성령의 은사운동과 희망 목회로 한국교회 부흥을 견인한 조 목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대형교회의 대명사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그런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판의 초점을 외적 부흥이 아니라, 교회의 선교와 사회봉사 등 본질적 사명에 둔다면 교세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성경은 교회의 외적 성장(행 2:41)과 내적 성숙(행 2:42)이 동시에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오늘날 메가처치(Mega Church)의 모델이다.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 오순절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불같은 성장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복음이 온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 같은 부흥

여의도순복음교회는 58년 서울 변두리인 서대문구(현 은평구) 대조동의 깨밭에서 천막교회로 출발했다. 당시 ‘할렐루야 아줌마’로 유명한 최자실 목사가 병약했던 조용기 전도사를 도와 더위와 추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서대문 변두리 빈민가를 발이 부르트도록 순회하며 전도했다. 머잖아 조 전도사는 최 목사의 딸(김성혜 한세대 총장)을 내조자로 맞이해 함께 전도하며 개척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극진한 정성과 젊은 전도자의 능력 있는 설교는 소문이 났고 수많은 영혼들이 천막교회를 가득 메웠다. 더욱이 신유의 은사를 받은 조 전도사는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우들을 치유함으로써 교회는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알려져 지방에서도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조 목사는 “제2의 오순절 같은 성령의 역사였다”고 회고했다. 당시는 6·25 직후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국민들은 살 길을 찾아 서울로 대거 몰려들었고 그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 목사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척 초기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했으며, 헐벗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믿음과 꿈을 가지라고 위로했다. 아울러 순복음신앙의 핵심교리인 ‘오중복음(五重福音)’과 ‘삼중축복(三重祝福)’을 가르치며 ‘4차원의 영성’으로 성도들을 훈련시켜 나갔다.

이러한 조 목사의 희망 목회는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줌과 동시에 심령과 삶에 큰 변화를 가져 왔으며, 성령의 역사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삽시간에 부흥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노래한 아삽의 시처럼 교회 개척 60년 만에 55만 성도로 세계 최대의 교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복음과 선교, 사회봉사에 앞장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 복음 전파와 해외선교, 국내외 봉사사역이라는 입체적 교회사역에 힘을 쏟고 있다. “세상에 보냄을 받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라고 역설한 선교신학자 요하네스 블라우의 말처럼 조 목사는 지금까지 지구를 120번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선교지를 개척했으며 국내외 고통당하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왔다.

조 목사는 어린이 심장치료봉사를 비롯해 청소년 기술학교, 노인복지 등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에 일생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전 세계 선교지에 500여 교회를 개척했으며, 일본 복음화를 위해 별도로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선한사람들과 영산조용기자선재단 등 공익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의료, 문화 진흥에 힘쓰고 있다. 동양 최대 엘림복지타운 건설과 기술학교 운영, 한세대를 통한 인재양성 등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으며 수년 전에는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평양에 ‘영산조용기심장병원’을 착공했다. 일시 중단된 이 사업이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라 완성된다면 인도적 지원을 통한 북한 복음화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88년엔 세계 유일의 기독교 일간지인 ‘국민일보’를 창간해 지면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한편 기독교의 대사회적 권익을 대변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설립 50년이 되던 2008년 조 목사의 제자 이영훈 목사를 후임으로 세워 대형교회 담임 승계에 모범을 보였다. 이 목사는 “초대교회의 21세기 모델인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기 위해 선교와 봉사 등 조용기 원로목사님이 50년 간 추진한 사역을 더욱 힘 있게 감당해 나갈 것”이라며 희망찬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015년 11월 ‘대형교회의 선교 책무’라는 주제로 콘퍼런스가 열렸다. 국내외 복음전도자들은 오늘날 대형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선교와 사회적 봉사에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세계 최대 대형교회 10개 중 4개가 한국에 있다는 신학계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한국교회는 선교와 봉사에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

‘19세기에는 영국이 미국 선교에, 20세기에는 미국이 아시아 선교에, 21세기에는 한국이 세계선교에 앞장서야 한다’는 교회사적 요청이 한국교회의 어깨에 놓여 있다. 종교개혁 500년 역사상 단일교회로 세계 최대 교세를 이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 일을 가장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글=김성영 목사(전 성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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