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살아남은 여자는 슬퍼라”







박완서는 6·25 전쟁에 대한 집착을 여러 곳에서 고백한다.

"6·25는 내 기억의 원점이다." 그리고 "유독 6·25 때의 기억만은 마냥 내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는 게 이젠 지겹지만 어쩔 수가 없다." 박완서 문학은 6·25 전쟁에서 시작해서 6·25 전쟁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은 박완서 문학의 기원이자 종착지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전쟁은 언제나 과거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든 중요한 원초적 체험으로 사유된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나목'도 그렇다.

‘나목’은 1971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이며, 이후에 펼쳐지는 방대한 박완서 문학의 원천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실제로 미군 피엑스(PX) 초상화부에서 근무하던 시절(1951∼1952)에 만났던 화가 박수근과의 인연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박수근과의 만남은 작가로서 박완서의 삶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나목’ 이후에도 박완서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등의 소설과 여러 에세이에서 박수근과의 만남에 대해 언급한다. 그만큼 그와의 인연은 작가 박완서의 인간적 예술적 성장에 중요한 계기였다. ‘나목’의 결말 부분에서 박완서는 박수근의 ‘나무와 여인’으로 짐작되는 작품을 언급한다.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여인’(1956)은 헐벗은 나무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한 여인은 짐을 이고, 다른 한 여인은 아이를 업었다. 박수근은 이 그림 외에도 헐벗은 나무와 그 주위를 맴도는 고달픈 여인들의 일상을 자주 그렸다. 한국전쟁 당시 후방에 남겨진 여성들은 부재하는 남성을 대신해 생계와 부양의 의무를 떠안았다. 박수근의 그림이 담아낸 것은 그렇게 후방에서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여자들의 고단한 삶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나목’의 여주인공 이경의 황량한 내면 풍경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나목’은 전시상황의 불안 속에 던져진 스무 살 처녀 ‘나’(이경)의 성적 모험담으로 시작한다. ‘나’는 전쟁 중에 아버지와 오빠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갑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처녀 가장이다. 스무 살 처녀답게 발랄하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나’는 미군 피엑스 안에 있던 한국물산 초상화부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미군들에게 가족이나 애인의 초상화를 스카프에 그려서 보내도록 부채질하는 일종의 거간꾼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세 남자를 만나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자신의 욕망에도 눈을 뜬다. 동경과 연민의 대상인 (박수근을 모델로 한) 진짜 화가 ‘옥희도’, ‘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같은 또래의 피엑스 전공(電工) ‘황태수’, 그리고 창녀도 양가집 규수도 아닌 그저 ‘한국 여자’를 안고 싶어 하는 미군 병사 ‘조오’가 바로 그들이다.

소설은 중후반까지 아슬아슬하게 성적 일탈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이경의 불안한 심리를 따라간다. 그러다가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감춰졌던 비밀이 드러난다. 미군 병사 조오와의 충동적인 정사를 통해 처녀성의 금기를 위반하려는 순간,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기억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기 탓에 폭격으로 죽은 오빠들. 그리고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은 어머니의 한탄소리.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 놓으셨노.”

이 말은 그녀에게 “원성과도 같은, 주문(呪文)과도 같은 끔찍한 소리”다. 차라리 아들 대신 계집애인 네가 죽지 왜 너만 살았냐는 엄마의 비난. 그리고 오빠들을 죽게 하고 자기 홀로 살아남았다는 끔찍한 자책. 딸의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는 이 저주에 가까운 엄마의 탄식이야말로 ‘나’가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가장 끔찍한 기억이다. 믿고 사랑했던 엄마에게 완벽하게 외면당한 딸은 그런 엄마에 대한 복수심에 스스로를 자기 파괴의 충동으로 몰아간다. “자식이라고는 없는, 딸도 없는 불쌍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어야지.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스무 살 처녀의 성적 모험으로 시작한 소설은 그렇게 전쟁에 상처 입은 처녀의 저 복수심과 억압된 죄의식이 뒤엉킨 자기 분열의 심리극으로 반전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또 알게 되는가? 그것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억압성이다.

오빠들이 죽은 후 ‘나’는 깨닫는다. 가부장제적 질서 안에서 아내나 엄마의 역할을 맡지 않는 딸이란 언제든지 떼어버릴 수 있는 장식적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딸이 비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도 어머니에게 딸은 언제든지 배제될 수 있는 잉여적 존재에 불과하다. 하물며 아들 대신 살아남은 딸이랴. 가부장제 하에서 어머니는 아들‘만’의 어머니다. 전쟁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고 여자들은 살아남았다. 박완서의 ‘나목’은 그렇게 남성들의 죽음으로 헐거워진 가부장제 하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보잘것없는 지위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나목’은 전시(戰時)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관찰과 상상력이 집중되는 영역은 일상적 삶이다. 그래서일까. ‘나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기는 이 소설이 발표되던 1970년대 당시의 의식과 삶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는 가족 이기주의 혹은 속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박완서가 살았던 1970년대 근대화된 도시의 일상을 지배했던 것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존 제일주의였다. 그것은 박정희식 개발주의가 불러온 속물주의의 핵심이었다. 박완서의 ‘나목’은 전시의 일상을 그리면서 그것을 통해 그 생존 제일 속물주의의 기원이 다름 아닌 전쟁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예컨대 ‘나목’에서 혼외 자식인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양공주 노릇도 마다않으면서 그것을 위대하고 도덕적인 모성으로 포장하는 ‘다이아나 김’은 생존을 다른 무엇보다 최상의 가치로 치부하는 생존 제일주의자의 전형이다. 주인공 이경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경은 불현듯 “물구나무가 서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만큼 안온한 일상적 질서와 제도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반복적이고 권태로운 일상 속으로 투항한다. 이경은 화가인 옥희도로 상징되는 예술가적 삶도, 조오로 상징되는 개인주의적 삶도 거부하고 황태수와 결혼해 결국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적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나목’에서 이경은 결혼 이후의 삶 속에서 오히려 생존 욕망과는 다른 욕망의 가능성을 꿈꾼다. ‘나목’은 그럼으로써 결혼이 여성 성장의 완결점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임을 암시하는 소설이다.

19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여성 현실에 대한 박완서의 비판적 의식은, 이렇게 전쟁을 겪은 뒤 살아남은 여자들의 자기 발견을 거쳐 벼려졌다. ‘나목’의 이경이 안주한 세계는 사실 이경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세계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경 또한 안락한 속물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그러나 이경의 예민한 자의식은 결코 무뎌지지 않는다.

남편이 쓸모없이 불편한 고가를 해체시켜 우리의 새 생활을 담을 새 집을 설계하듯이, 나는 아직도 그의 아내로서 편치 못한 나를 해체시켜, 그의 아내로서 편한 나로 뜯어 맞추고 싶었다. (… )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것들의 빛, 그것들의 속삭임, 그것들의 아우성을 가끔가끔 필요로 했다. 그리고 보니 아직도 해체되지 않은 한 모퉁이가 내 은밀한 곳에 남겨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많이 아픈 것이다. 많이… 아니 그저 조금, 견딜 수는 있을 만큼 조금 아픈 것이다.

자기 안의 “해체되지 않은 은밀한 한 모퉁이”는 아프다. 이경은 그 아픔을 속으로 간직하고 견뎌낼 것이다. 그것은 불편함을 해체하지 않고 자기 존재의 일부로 끌어안겠다는 의지이며 비록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선택했지만 그 삶의 속물성에 투항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다. 박완서는 중산층적 삶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문 바깥의 시선과 의식을 견지하고자 했던 ‘냉정한 관찰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박완서는 그 자신이 “해체되지 않은 한 모퉁이”의 삶을 살았던 작가였다. 박완서의 ‘나목’은 1970년대의 속물적 삶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작가 박완서야말로 그 자신, 살아 있는 질문이었다.

■박완서는 40세에 등단… 다양한 스펙트럼의 국민작가

1931년 경기도 개풍 박적골에서 태어나 숙명여고를 졸업했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중퇴하고 만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 직후부터 2011년 별세 직전까지 거의 40년간 정력적인 집필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들과의 지적,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 온 국민작가다.

전쟁과 분단 체험을 다룬 소설은 물론,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사회의 속물의식과 중산층의 허위의식, 물질 만능주의 등 한국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를 추적하는 소설, 가부장적 현실 속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현실을 다룬 소설, 노년 세대의 아집과 소외를 다룬 소설, 자전적인 경험을 녹여낸 소설에 이르기까지 박완서 문학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깊다. 2007년까지 전집으로 정리된 장편소설만 17권(세계사), 단편소설은 6권(문학동네)이다. 2007년 이후 출간된 단편소설집도 2권이 있다. 그 밖에 콩트집이 3권, 동화가 8권, 에세이집은 20권쯤 된다.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로 '나목' '휘청거리는 오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등이 있다. 에세이집으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어른 노릇 사람 노릇' 등이 있다.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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