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49)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탈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정의와 사명을 지키는 의사(‘골든타임’), 삶에 찌든 회사원(‘미생’), 알츠하이머를 앓는 변호사(‘기억’)….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저는 극적인 묘사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든 평범한 인물로 끌어내리는 편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평범함 때문에 ‘인간적인 배우’라고 말씀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평범해서 그런 거죠 뭐. 저는 그리 잘생기지도, 멋있지도 않고 그냥 동네사람 같으니까(웃음).”
3일 개봉한 영화 ‘보안관’에서도 이성민은 친근감을 물씬 뿜어낸다. 극 중 부산 기장의 한 마을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대호 역을 맡아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낸다.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대호가 잘 나가는 외지인 사업가 종진(조진웅)을 마약사범으로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극의 줄기다.
어떤 상황에도 소신을 잃지 않는 대호를 표현하기 위해 이성민은 외양부터 단련시켰다. 체중을 감량하고 다부진 근육질 몸매를 만들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외모에 신경써가며 작품에 임한 건 처음이었다”며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모델로 삼았다. ‘기장 어벤져스’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조진웅 김성균 조우진 배정남 등 후배들과 함께한 촬영장에서 이성민은 맏형 역할을 든든히 해냈다. 그는 “배우들 조합이 잘 맞았다. 현장 분위기가 워낙 좋아 촬영에 어려움이 없었다”며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는 쇼트트랙 게임 같았다. 그런 정교함이 영화에서도 보이더라”고 만족해했다.
이성민은 이 영화를 ‘착한 식당에서 파는 담백한 된장찌개’에 비유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중년 아저씨들의 로망에 대한 이야기”라며 “암울한 시대를 풍자하고자 한 측면도 있다. 주민들이 종진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돌아서는 과정이 시국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같은 느낌이죠. 남자들에게 중년은 굉장히 애매한 경계에 있는 나이거든요. 패기를 잃어버리고, 매사에 겁이 나고….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다. 우리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아재’만을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웃음).”
이성민에게도 패기를 잃고 고뇌했던 시기가 있었다. 연기 인생 30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영화 ‘로봇, 소리’(2016)가 흥행에 실패한 뒤 적잖은 좌절감을 맛봤다. ‘주연은 내 몫이 아니구나’라는 자괴감까지 느꼈을 무렵, ‘보안관’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내게 됐다.
“굉장히 중요한 기로에 서있는 거죠. ‘보안관’은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기준점이 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물론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작품에 참여한 배우 스태프 투자자 제작자 등 모두를 위해 내가 해야 될 책임인 것 같아요. 근데 잘 안 되더라도 딛고 일어나야죠. 극복하는 게 현명한 것이란 걸 이제는 알았거든요.”
이성민에게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역할에 따라 늘어나는 책임감을 감당해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할 뿐이다. “아무튼 해보려고요. 이제 겨우 두 번째 주연이니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